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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2009.04.05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

 

신앙생활… 겉사람과 속사람의 끝없는 싸움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박고 주님을 따라갈 때
하나님 영광 드러내며 승리의 삶 살 수 있어


 제가 대조동에서 목회할 때의 일입니다. 한 자매님이 일찍 청상과부가 돼서 외아들을 기르며 행상을 하고 있었는데, 전도를 받고 교회에 나와 예수님을 믿고 나서 그렇게 기뻐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 1년쯤 지나서 이제는 신앙이 상당히 깊어졌다고 생각했는데 하루는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저를 찾아와서 “전도사님, 이제 그만 믿을까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마음에 고통이 없었는데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에는 하루도 쉬지 않고 마음에 고통과 괴로움이 있어서 더 이상 믿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늙어서 자식도 다 키워놓고 할 일이 없을 때 다시 교회에 나올 테니 이제 그만 작별인사하렵니다” “아니, 무슨 이유로 그렇습니까?” “부끄럽지만 행상을 하자면 거짓말을 해야 합니다. 물건 값을 비싸게 주고 사서 싸게 판다고 말하고 물건도 좋지 않은 것을 좋은 물건이라고 과장해서 팔아야 합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그렇게 해도 아무런 괴로움이 없었는데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에는 양심에 가책이 느껴져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새벽기도에 나와서 눈물을 흘리고 회개하지만 그리고 나서는 또 그 짓을 합니다. 회개해도 또 그 짓을 하고 다시 회개해도 또 그 짓을 하니 자꾸 이럴 바에야 내가 안 믿는 것이 낫지 이런 위선적인 생활을 계속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에 처음에는 너무 즐겁더니 이제는 고통스럽습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우리 안에서 육과 영의 전쟁이 일어나는 체험을 다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육만 살았으니까 전쟁이 안 일어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에는 영혼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활했기 때문에 영혼은 하나님을 섬기려 하는데 육체는 마귀와 세상을 따라 살려고 하니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서 무엇을 하든지 내가 원하는 대로 산 것은 내 영이 죽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자 영혼이 살아나서 겉사람, 즉 육체의 사람과 주권 다툼을 하는 것입니다.

 

 1. 한 몸 안에 있는 두 주인

 아담의 범죄 이후 인간의 첫 주인은 우리의 육신이었습니다. 우리의 첫 주인인 육신이 죄와 마귀의 종으로 살았기 때문에 우리는 죄와 마귀에게 끌려가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둘째 주인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구원받은 신령한 사람, 의와 예수님의 종 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죄의 무덤에 갇혀 죽어 있었는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활해서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 몸에 새로운 주인이 들어온 것입니다. 육신이 첫째 주인이었는데 영혼이라는 다른 주인이 생겨나서 주도권 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로마서 6장 6절로 7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겉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속사람이 살아나서 의롭다함을 입고 주님을 따라서 살겠다고 하니까 겉사람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반발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이란 끝이 없는 싸움입니다. 저는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으면 평안합니다”라고 해서 믿었는데 믿고 나니까 마음에 굉장한 갈등만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속사람은 희망이 생기고 꿈이 생기고 믿음이 생기고 소망이 넘쳐나서 참 기쁘지만 겉사람은 굉장히 고통스럽습니다. 세상과 마귀와 세상의 쾌락이 자신을 끌고 가려고 하는데 그것을 대적하니까 육의 사람은 굉장히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2. 신앙생활이란 끝없는 싸움

 거듭나서 천국인이 된 처음 신앙인은 아직 반은 육의 사람이라서 마귀와 죄를 따라가고 반은 영적 사람, 그리스도의 의와 성령을 따라가는 사람이 됩니다. 내가 반쪽이 나서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내 속에서 전개되는 영과 육의 싸움, 성령과 악령의 다툼은 끝이 없습니다. 육신을 따라가면 영은 죽습니다. 반대로 영이 살려면 육신은 죽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속에 일어나는 싸움은 보통 싸움이 아니라 살벌한 싸움입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우는 것입니다. 레슬링 선수들이 서로 엉켜서 밀고 당기고 하는 것처럼 지금 우리의 영과 육이 끊임없이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5절로 6절에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육신은 자꾸 육신의 생각을 합니다. ‘영화를 보니 참 좋더라. 술을 마시니 좋더라. 도박하니 좋더라. 음란하고 방탕하니 좋더라. 세상 쾌락을 찾아가니 좋더라. 그리로 따라가라. 오늘은 주일이지만 친구들하고 놀러가라. 교회 가지 마라’ 그런 생각을 자꾸 줍니다. 그런데 영의 생각은 ‘아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죄에서 놓여나 거듭났고 성령이 마음속에 계시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예배드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과 친분을 쌓고 말씀을 읽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반대입니다. 그래서 싸움이 붙고 마음이 요란스러운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사람의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영과 육의 치열한 싸움, 마귀와 성령과의 치열한 싸움이 우리 속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한 인디언 노인이 손자에게 삶에 대하여 가르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음속에서는 늘 싸움이 일어난단다. 그 싸움은 너무나 끔찍한 싸움이어서 마치 두 마리의 늑대가 싸우는 것과 같단다. 하나는 악마 같은 놈인데 분노, 질투, 슬픔, 후회, 탐욕, 교만, 죄의식, 열등감, 거짓, 허영을 나타낸단다. 그러나 다른 놈은 선한 늑대로서 기쁨, 평화, 사랑, 희망, 친절, 선의, 고요함, 겸손함, 동정심, 관대함, 진실, 연민, 신뢰를 나타낸단다. 이 두 마리의 늑대가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싸운단다” 그러니까 손자가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할아버지, 그러면 어느 늑대가 이깁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싱긋 웃으면서 “그거야 네가 먹이를 주는 놈이 이기지!”라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은 아주 현명한 대답입니다. 나쁜 늑대에게 먹이를 주면 나쁜 늑대가 힘을 얻어서 이기고, 좋은 늑대에게 먹이를 주면 좋은 늑대가 힘을 얻어서 나쁜 늑대를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육을 따라서 세상을 따라가고 쾌락을 따라가고 술에 취하고 방종하고 방탕하면 육을 자꾸 키워주는 것이기 때문에 육이 힘을 내어 영을 뒤엎어 버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하고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예배에 참석하고 성도와 교제가 많아지고 하나님과 동행하면 영을 자꾸 먹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영이 힘을 얻어 육을 눌러 버리고 승리하게 됩니다. 우리가 어느 편을 먹여 주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육과 영이 각각 50% 정도씩 차지하면 꽤 자란 성도입니다. 육이 50%, 영이 50% 정도를 차지했기 때문에 영과 육이 싸울 때에 서로 비슷한 싸움이 되면 그래도 꽤 자란 성도인 것입니다. 그리고 영과 육이 70% 대 30% 정도의 비율이면 믿음이 장성한 성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영이 점점 자라서 육을 자꾸 죽이고 성령이 우리 마음을 더 점령하고 악령을 쫓아내고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시종이요 머슴이요 일꾼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점령한 100% 영의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빌립보서 1장 20절로 21절에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정도 되면 100% 성장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가겠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이다” 이 정도 되면 육이 꼼작 못합니다. 세상과 마귀가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내가 세상에서도 살고 하늘나라에서도 살고 내 안에 육도 있고 영도 있게 되면 끊임없는 투쟁과 갈등과 고통이 있습니다. 매일 회개해도 그 다음날 또 죄를 짓고 다시 회개해도 똑같은 죄를 짓고 하다 보면 마귀가 와서 ‘너는 구원받을 수 없다. 너는 천국에 못 간다’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그러다보면 낙심해서 교회를 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원히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우리 마음의 싸움은 성결의 싸움입니다. ‘얼마나 더 거룩하게 되느냐’의 싸움인 것입니다. 우리 구원의 싸움은 예수님이 이미 해결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의 원죄와 자범죄를 영원히 다 용서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남아있는 싸움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아 죄에 대한 빚은 다 청산됐지만 구원받은 다음에 성결하게 돼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성결의 싸움이 육과 영의 싸움이요, 마귀와 성령의 싸움인 것입니다. 우리가 성결하게 되면 될수록 우리의 신앙이 자라고 하늘나라에 올라갔을 때 주님과 더 가까이 거할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육이 강하고 영이 약할수록 하늘나라에 갔을 때 주님에게서 더 멀리 떨어져 있고 영광도 광채도 적게 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일 회개해도 좋습니다. 천 번, 만 번 회개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회개해도 계속 죄를 짓는데 더 이상 회개할 필요가 있겠느냐?” 그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기 위하여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의 온전한 주인이 되시기까지 항상 투쟁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을 때 영적으로는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정욕과 탐심이 우리에게 일어나서 우리를 휘어잡을 때 우리는 도저히 못 이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욕과 탐심은 이미 이빨이 빠졌습니다. 십자가에서 이미 못 박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결심하고 싸우면 이길 수가 있습니다. 협박과 공갈을 하고 고함을 치지만 실상은 이빨 빠진 호랑이인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가지고 대결하면 십자가의 승리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9장 23절에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주님, 저는 십자가에 내 자신을 못 박고 주님을 따라가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성령께서 저를 도와주시옵소서”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언제나 십자가를 걸머지고 십자가를 바라보고 기도하면 비록 한순간에 이루어지지는 않지만 천천히 이루어집니다. 요사이 봄이 오는 것을 보십시오. 봄이 다 왔는가 싶으면 또 겨울이 오고 또 겨울이 오는가 싶으면 또 봄이 오고 꽃이 피는가 하면 또 눈이 오고 눈이 오는가 하면 또 단비가 내리고 왔다 갔다 합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봄이 오고 겨울은 물러가고 맙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한번 주님께 은혜를 받아서 굉장히 행복했으나 또 죄를 짓고 낙심하고 절망하고, 그 다음에 다시 회개하고 일어났다가도 또다시 쓰러지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점령한 나의 삶을 하나하나 예수님께 내어놓아야 합니다. 제일 처음에는 내가 나를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에는 성령께서 우리 속에 들어와서 점점 우리를 점령해주시려고 합니다. 그래서 ‘나’라는 육체와 성령님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성찬에 참여하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힘이 생기기 때문에 점점 육적인 나를 굴복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 안에 계시는 주님께서 살아서 주님이 내 주인이 되고 나는 주님을 섬기는 일꾼이요 머슴이요 시종이요 종이 돼야 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십자가에 함께 못 박혀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이제 나는 죽은 자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으므로 예수님이 내 속에서 주인으로 살게 된 것이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우리의 현실은 예수님과 십자가에서 함께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속에 예수님이 살아있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진리를 알고 마귀에게 대항해야 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었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시는 것이다” 그렇게 선포하며 믿음을 강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언제나 자기 전에 창문가에 서서 하늘을 쳐다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하늘과 땅과 우주가 내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 일생이 내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입니다. 오늘 밤이 내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안심하고 자렵니다” 우주가 내 것이면 내가 걱정해야 합니다. 인생이 내 것이면 내가 걱정해야 합니다. 자고 깨는 것이 내 것이면 내가 걱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아닌 예수님이 주인이시면 예수님이 걱정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네 짐을 야훼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시 55:22)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주인이면 내가 책임을 다 져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아니라 예수님이 주인이 되시면 예수님이 맡아서 능력으로 주장해 주십니다. 우리는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는 내일 일도 모르고 오늘 내 주위에 일어날 일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께 맡겨 놓으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역사를 이루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주인이 되시면 그냥 오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모든 소유물을 가지고 들어오십니다. 먼저 의로움을 가지고 들어오십니다. 우리의 죄를 예수님의 보혈로 다 용서하시고 의로움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또 주님이 우리 속에 들어올 때는 모든 더러움을 다 씻어 버리고 성령의 거룩함을 가지고 들어오십니다. 예수님이 우리 속에 들어올 때에 우리의 병과 연약함을 다 청산해 버리고 치료와 건강을 가지고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속에 들어올 때는 모든 저주의 가시와 엉겅퀴를 제거하시고 아브라함의 복을 가지고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주인으로 들어오실 때는 사망과 음부를 멸하시고 영생 복락 천국을 가지고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 인생이 얼마나 보배로워지는 것입니까?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고 영이 죽고 난 다음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비참한 처지에 놓이게 됐습니다. 죄의 노예가 되고 추함의 노예가 되고 질병의 노예가 되고 저주와 가난의 노예가 되고 멸망과 지옥의 노예가 돼서 비참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들어오시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예수님께서는 태양처럼 빛을 비추시며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에게 의로움을 주시고 거룩함을 주시고 치료를 주시고 아브라함의 복을 주시고 영생 복락 천국을 주시고 우리와 같이 계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 4:6) 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성경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2)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성령님을 의지하고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서 살아야 합니다. 성령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 늘 기도해야 합니다. 아침에도 기도해야 하고 점심때도 오후에도 저녁에도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시여. 거룩하게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성령이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셔서 거룩하고 성결하게 살 수 있게 만들어 주시고 충분하게 자란 성도가 되도록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시면 참 평안과 기쁨과 천국의 소망과 확신을 갖게 되고 마귀와 죽음에 대한 담대함이 생겨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의와 거룩함과 치료와 아브라함의 복과 부활 영생 천국을 가지고 내 속에 들어오셔서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 마음속에 충만히 거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에 우리의 마음속에는 끝없는 싸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초신자일 때는 싸움이 맹렬하나 점점 신앙이 자람에 따라 싸움에서 일방적인 승리를 하기 때문에 점점 더 평안이 다가옵니다. 우리가 말씀을 먹고 성찬에 참여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고 기도해서 육의 사람, 마귀의 사람을 다 이겨 버리고 성령의 사람, 영의 사람, 속사람이 승리하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래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삶을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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