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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에서 이스라엘로
2008.11.1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그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창세기 32장 24∼32절

 

말할 수 없는 인생의 고난을 만났을 때
자아가 깨어지고 회개하고 변화되면
인생의 진정한 승리자되고 태양 떠올라


 교회의 성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침례와 성찬입니다. 그런데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침례와 성찬에 이어 고난을 ‘제3의 성례’라고 말했습니다. 침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을 확인한 후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의 성품에 참여했다 할지라도 고난 가운데 자아가 깨어지지 아니하면 아무리 침례를 받고 아무리 성례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총에 참여했다고 해도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침례 받고 성찬을 받고 고난을 통해서 자기를 깨뜨려야 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를 교육할 때 매 한 대로 아이가 완전히 깨어져서 순복하면 좋지만 고집을 부리면 열대를 때리고 그 이상도 때립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고난을 주실 때 우리가 쉽게 순종하고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하고 나오면 간단히 해방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집을 부리고 반항하고 우리가 원하는 길로 가면 더 많이 맞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 당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하나님 원하는 사람으로 만들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예를 야곱의 생애를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1. 귀향하는 야곱과 그 가족

 야곱은 외삼촌 집에서 20년 머슴살이한 끝에 하나님의 은총으로 상상을 초월한 거부가 되어 돌아옵니다. 그는 창세기 32장 10절에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돌아올 때 마음의 고통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형하고 사이가 나빴습니다. 그는 팥죽 한 그릇으로 형의 장자권을 빼앗고 나중에는 형처럼 양털을 손과 목에 두르고 눈이 어두운 아버지 이삭에게 가서 형이라고 속이고 축복을 다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형이 노해서 죽이려고 하니까 어머니가 친정집으로 도망을 보냈습니다. 20년 후 그는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그 마음에 상처는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 정탐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얍복 나루터에 왔는데 보낸 사자들이 달려와서 “큰일 났습니다. 주인님! 형님이 400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달려오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창세기 32장 6절로 7절에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라고 말씀합니다. 싸우기 위해 400명이나 되는 장정을 거느리고 온다니 야곱은 이제 죽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이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부자가 되어서 돌아온들 형과 400명의 장정들이 와서 칼로 치기 시작하면 다 죽고 재산도 다 뺏기지 않습니까? 그래서 야곱은 어떻게든 형의 마음을 얻어 볼까 싶어 암염소 200마리, 숫염소 20마리, 암양 200마리, 숫양 20마리, 젖 나오는 낙타 30마리, 암소 40마리, 황소 10마리, 암나귀 20마리 등을 예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창세기 32장 20절에 “또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종 야곱이 우리 뒤에 있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 함이었더라”고 말합니다. 물질을 보내어서 형의 마음을 녹이려고 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안심되지 않았습니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 형은 선물로 준 선물은 다 빼앗고 또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족들만 먼저 얍복강을 건너게 했습니다. 다 건너보내고 자기는 건너지 않았습니다. 최악의 경우 도망치겠다는 것입니다. 이게 야곱입니다. 자아가 강해서 처자들과 짐승들을 다 버려 놓고 난 다음 상황을 보고 형이 와서 자기를 죽이기 전에 처자들부터 먼저 칼로써 죽일 것이니 그때에  도망을 치겠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2. 하나님과 씨름한 야곱

 그는 창자가 끊어질 듯이 부르짖으며 고통 속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날이 어두워지더니 어떤 사람이 나타나 야곱의 멱살을 잡았습니다. 그리고는 “이놈아 건너가라! 처자와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라!”고 소리쳤습니다. “나는 못갑니다” “가라!” 그래서 둘은 씨름을 합니다. 둘이 밤새도록 밀고 당기는데 야곱의 고집이 얼마나 센지 날이 샐 때까지 양보를 하지 않았습니다. 처자는 죽더라도 자신은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야 이놈아! 처자가 죽으면 너도 같이 죽어야지.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야 되지 않겠느냐? 건너가라!” “못 건너가요” 그때까지도 야곱은 자기와 씨름하는 자가 누군지 몰랐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자인데 그때 하나님의 사자는 육신으로 오기 전의 예수님이셨습니다. 야곱과 밤새 씨름한 예수님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3. 야곱이 깨어진 장면

 결국 손을 들어서 야곱의 환도뼈를 쳤습니다. 환도뼈가 어그러지니까 야곱이 그 자리에 쓰러져서 절름발이가 되었습니다. 도망을 쳐야 되는데 이제는 환도뼈가 어그러졌으니까 도망을 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부여 잡았습니다. “당신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복을 주십시오. 나에게 복을 안주면 당신을 절대 놓지 않겠습니다. 나는 이제 절름발이가 되어서 형이 오면 도망도 못가고 이제 죽게 되었습니다” 결국 도망치겠다는 인간적 계획이 허물어졌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뜻에 거역된 일을 하면 하나님이 허벅다리를 치십니다. 가정의 허벅다리, 사업의 허벅다리, 신체적 허벅다리를 치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계획대로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없이는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축복이 있어야 안 무너지지 하나님의 축복이 없으면 무너져 버립니다. 가정도 하나님의 축복이 있어야 되고, 자식을 기르는 것도 하나님의 축복이 있어야 되고, 사업을 하는 것도 하나님의 축복이 있어야 됩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환도뼈를 쳐서 어그러트리시고 인간의 힘으로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것입니다. 이제는 처자들과 같이 갈수도 없고 도망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고 하나님이 같이 하셔야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창세기 32장 26절에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때 그 천사가 물었습니다. “네 이름이 뭐냐?” “야곱이니이다” 야곱이라는 말은 속이는 자, 빼앗는 자, 발꿈치 잡은 자인 것입니다. 이름치고는 좋지 않은 이름입니다. 야곱은 자기가 자기 이름을 불러도 빼앗는 자, 속이는 자, 발꿈치 잡는 자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때 이 하나님의 사자가 그 이름을 바꾼 것입니다.

 

 4. 변화된 야곱

 창세기 32장 27절로 28절에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과 씨름해서 져야 이기는 것입니다. 이기면 계속 야곱입니다. 지면 이스라엘이 되는 것입니다. 깨어져서 항복하면 이스라엘이 되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같이 하시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겨루는 씨름에서 끝까지 고집을 부려 야곱으로 있으면 하나님은 같이 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깨어져서 변화되면 상대도 변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변화시켜야 야곱을 통해서 에서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먼저 자신부터 변화시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주님을 앙망하면 매일같이 주님이 와서 우리와 씨름하고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큼직한 씨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작은 씨름도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기 싫은 마음이 있는데 하나님은 오셔서 교회 가라고 하십니다. 교회 갈까 말까 씨름하는 것입니다. 십일조 드릴까 말까 씨름하는 것입니다. 전도할까 말까 씨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씨름할 때 우리들이 결국 항복해서 ‘하나님 좋으면 나도 좋고, 하나님 싫으면 나도 싫습니다. 나는 하나님 편에 서서 따라 가겠습니다’라고 고백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사용해서 교회 갈 마음이 생기게 만들어 주시고 기뻐할 마음이 생기게 만들어 주시고 전도할 마음이 생기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움직여 주셔야 합니다.

 제가 불광동에서 개척할 때 현 순복음의정부교회 담임인 박종선 목사님은 우리 교회 와서 고통을 많이 주었습니다. 그때 주먹 잡이로 교회 것을 모조리 팔아먹고 심지어는 산소통으로 만든 종까지 짊어지고 가서 팔아먹었습니다. 그런데 하도 주먹이 센 사람이라 감당을 못했습니다. 어느 토요일, 주일 예배를 준비하기 위해서 교회에서 기도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죽는 소리를 해 뛰어 나가 보니 박종선 목사가 왔습니다. 아이들은 그의 목과 어깨에 매달리고, 팔과 다리를 끌어안고 “회개하라! 회개하라!”고 소리치는 것이었습니다. 계속해서 아이들이 “사탄아 물러가라! 마귀야 물러가라! 회개하라!”고 소리치자 놀랍게도 “어헝∼ 어헝∼”하며 박종선 목사님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그 마음이 변화된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교회에 참석하기 시작하고 청년 지도자가 되고 오늘날 세계적인 주의 종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 마음을 누가 변화시켰습니까? 어린 아이들이 기도하니까 그 앞에 무릎 꿇고, 하나님 앞에 깨어지니까 하나님이 변화시켜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때에는 마음이 변화를 받아야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진정한 승리자는 하나님께 항복한 사람입니다. 그 씨름이 바로 고난인 것입니다.

 창세기 32장 30절로 31절에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고 말씀합니다. 그의 인생에 태양이 떠올랐습니다. 밤같이 캄캄하게 어두운 고통 속에 살다가 그 고통이 다 사라지면서 마음속에 태양이 떠오를 것입니다. 야곱은 20년 세월동안 형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과 공포를 가지고 살았었습니다. 하루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천사와 씨름하고 자기가 깨어지고 난 다음 자기 모든 인생을 하나님께 내어 맡겼습니다. 이제 절뚝발이가 되어 도망을 못치니 사나 죽으나 하나님께 맡겼던 것입니다. 염려와 근심도 하나님께 맡기고, 살고 죽는 것도 하나님께 맡기고, 먹고 사는 것도 하나님께 맡기고, 처자도 하나님께 맡기고, 모든 것을 완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나니 그 마음속에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5. 위대한 승리의 행진

 깨어지고 변화되었으므로 야곱은 가족을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죽더라도 가족은 살리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행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형이 이를 갈고 칼을 뽑고 단칼에 베려고 뛰어 오는데 보니까 머리는 삼발이 되고 옷은 찢어지고 흙투성이가 되어 형이 보니 한주먹 거리도 안돼보였습니다. 하나님 능력이 야곱과 함께 해서 형에게 임하니까 형의 마음이 얼음 녹듯이 녹아버렸습니다. 형은 말에서 뛰어 내려서 동생을 끌어안았습니다. 20년의 원한이 눈처럼 녹아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이지 사람 힘으로는 안 됩니다. 형이 집을 떠날 때는 완전히 야곱을 박살 내려고 떠났지만 절뚝거리는 야곱 앞에서 형은 400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항복을 하게 된것입니다. 원한이 사라지자 에서는 동생의 목을 끌어안고 울었습니다. 창세기 33장 4절에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고 말씀합니다. 이제 죽이러 온 사람이 호위병이 되고 만 것입니다. 죽이러 온 사람이 야곱을 보호하게 되었습니다. 형의 그 완악한 마음이 어떻게 녹아질 수 있었습니까? 야곱이 변화 되었기 때문에 형의 마음이 변화된 것입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같이 계셔서 하나님이 형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신 것입니다. 야곱이 이스라엘로 변화된 것처럼 먼저 내가 변화될 때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못합니다. 내가 변화되면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에서가 이르되 우리가 떠나자 내가 너와 동행하리라”(창 33:12) 얼마나 놀랍습니까? 야곱이 죽고 이스라엘로 변화되면 그 때 참된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41장 14절에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야훼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보십시오. 버러지 같은 야곱이라고 말합니다. ‘나는 우리 집에서 버러지 취급 받습니다. 나는 내 친구들 가운데 버러지 같이 취급 받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내가 예수 믿고 버러지가 되면은 나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야훼가 말하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버러지가 되면 하나님이 도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문을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아 놓으면 열자도 없습니다. 하나님 일으켜 세운 사람은 끌어 내려올 수가 없고 하나님이 끌어 내린 사람은 일으켜 세울 수도 없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깨어져서 절름발이 버러지가 되는 것은 패배자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깨어지고 지는 자가 진정한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로마가 유럽을 제패하고 대 로마제국이 된 것은 콘스탄틴 황제 시절입니다. 주후 312년 콘스탄틴은 막강한 군대를 가진 막센티우스와 로마의 티베르 강에서 서로 대체하여 밀비안 다리에서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이기는 자가 로마와 전 세계를 점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큰 고통에 빠진 콘스탄틴 황제는 고민을 하고 자기 막사에서 이 전쟁을 어떻게 이길까 고민하던 중 환상을 보았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리고 죽어가는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네가 승리를 하면 이 로마제국을 주님을 믿는 나라로 만들겠느냐? 네가 황제가 되면 깨어지고 주님의 종이 되겠느냐?” 그는 말했습니다. “이 전쟁에서 이기면 로마제국을 완전히 하나님께 바치고 나는 주의 종이 되겠나이다” 그러자 예수님은 십자가를 주시면서 “이 십자가로 이겨라!”고 말씀하셨고 당장 환상에서 본 십자가를 로마 군인의 투구에 그리고 방패에 그리고 난 다음 전쟁에 나가 막센티우스의 군대를 괴멸시켰습니다. 그래서 콘스탄틴은 기독교를 온 천하에 공인했고, 유럽이 기독교 국가가 된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 깨어지고 하나님 종이 되겠다고 하자 하나님이 그와 함께 싸워 주셔서 전쟁에 이기고 로마가 하나님 손에 쥐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도 얍복강이 있습니다. 남편이 얍복강이 될 수도 있고, 아내, 자식, 사업이 얍복강이 되어 고통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 얍복강을 승리로 건너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데 인생에 태양이 떠오르게 하기 위해서는 얍복강에서 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야곱이 이스라엘로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인생에 태양이 떠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긍휼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우리가 깨어지고 회개하고 변화 받게 도와주시옵소서. 남이 변화 받지 않는다고 욕하거나 흉보지 않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가 먼저 깨어지게 도와주시고 우리가 변화 받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가 새사람이 되게 도와주시고 우리 속에 있는 약삭빠른 사기꾼 같은 야곱이 다 깨어지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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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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