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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2008.03.23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마가복음 15장 12절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끌고 와서 고소할 때 빌라도는 난처했습니다. 그 아내가 ‘밤에 꿈을 꾸었는데 꿈에 예수님 때문에 애를 많이 썼다고 저 의인에게 손을 대지말라’는 쪽지를 보내 왔습니다. 그러니 빌라도가 아내의 쪽지를 받고 예수님을 심판해야 되는데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아무리 심문해 봐도 실제로 예수님께는 죄가 발견되지 아니하고 저들이 시기와 질투로 예수를 넘겨준 것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에 군중들에게 심판을 맡기기로 하고 그는 군중들에게 말했습니다.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우리는 이 말을 무심히 듣고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동일한 질문을 지구상 모든 사람에게 또한 우리들에게도 던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1. 예수님에 대한 성경적 예언

 예수님에 대한 성경적 예언은 우리는 무관심하게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 아버지를 가진 남자의 후손인데 성경에는 여인의 후손이 세상에 태어나서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고 구원의 은혜를 베풀겠다고 말했기 때문에 관심을 안 기울일 수 없습니다. 너나, 나나 다같이 아버지의 자식이면 별도리 없지만 예수님은 여자의 후손 즉, 아버지가 없이 태어난 분이라는 것입니다. 관심을 안 기울일 수가 없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에 이미 여자의 후손이 와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뱀은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고 십자가에 고통당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관심을 안 기울이려고 해도 그런 분이 오셨으니 그분을 우리가 믿을지 믿지 말아야 할지 결정을 내려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실상은 이사야 9장 6절에서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런 성경의 증언에 대해 우리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를 믿어야 되겠습니까? 믿지 않아야 되겠습니까? 참이라고 해야 되겠습니까? 거짓이라고 해야 합니까? 우리는 뜻을 표하지 않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중요한 사건에 부딪힌 것입니다.

 우리들은 살아있을 동안에 예수에 대해서 어떻게 결정을 할지 반드시 질문을 당합니다. 살아있을 동안에 우리가 대답을 안 하면 죽은 뒤 주님 앞에 서서 대답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의 사명선언

 우리는 예수님의 사명선언을 보아서 그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하나님은 마태복음 3장 16절로 17절에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늘에서 뇌성 벽력같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자’라고 했는데 우리는 이 사람에 대해서 뭐라고 말해야하겠습니까? 우리도 사랑하고 기뻐한다고 말해야 되겠습니까? 모른다고 말해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사랑하고 기뻐한다는데 우리가 모른다고 외면할 수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보낸 사람인데 우리가 문전박대할 수 없지 않습니까? 환영하든지 문전박대하든지 우리는 결정을 내려야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20장 17절로 19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고 말씀합니다. 아예 공공연하게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한대로 대제사장, 바리새교인, 사두개교인, 로마 사람들에게 잡혀서 십자가에 처형당하고 무덤에 들어갔다가 사흘 만에 살아나셨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주님이 죽었다가 살아난 것이 나 때문에, 우리 때문에 그랬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 33절로 34절에도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3.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증언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직접 본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죽는다는 것을 들었고 직접 그들 앞에서 예수님이 잡히는 것을 보고 다 도망을 쳤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매달려 있는 것을 눈으로 똑똑히 보고 좌절하고 절망했습니다. 예수님이 로마로부터 자신들을 구원해 줄줄 믿었는데 그 꿈이 다 사라지자 제자들은 낙담했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부활해 나타나셨으니까 그들이 쉽게 믿었겠습니까? 예수님이 죽는 것을 분명히 보았는데 환영을 보고서 예수님이 살아났다고 주장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이 40일 동안 살아나서 거듭거듭 제자들을 만나고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게 하시고 같이 식사하시고 식탁을 준비해서 대접해 주시는 것을 보았으니 부인할래야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의심할래야 의심할 수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직접 예수님을 3년 반 동안 따라다니며 희망을 가지고 재산도 가족도 다 버리고 청춘을 맡겨서 따라 왔는데 예수님이 저들을 떠나서 죽는 것을 눈으로 보았고 가장 절망과 좌절을 맛보았고 예수님이 죽은 것을 친히 본 그들에게 예수님이 직접 살아서 나타나셨으니 그들에게는 기막힌 충격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살아나신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제자들도 순교했습니다. 목숨을 바쳤다는 말인 것입니다. 어떻게 열두 제자 모두살아나지 않은 예수를 살아났다고 해서 죽임을 당했겠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이 죽었다가 살아난 것을 보고 체험했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목숨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보게 될 때 그리스도가 살아계신 증거는 너무나 뚜렷한 것입니다.

 언젠가 석가모니 뼈가 발견되었다고 하여 인도를 비롯한 불교 국가에서는 한동안 떠들썩 했습니다. 석가모니의 뼈들은 잘 진열되어 수백만 인도 사람들의 경의 속에 시가행진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뼈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한 선교사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옆에 있던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의 뼈가 하나라도 발견됐다는 뉴스가 보도되면, 저들과는 정 반대로 아마도 기독교는 산산조각이 나고 말거야” 왜 그렇습니까? 기독교는 죽은 자를 믿는 것이 아니요 부활하여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난 예수님을 믿지, 죽은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은 비었습니다. 부활하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망은 살아있는 소망이요, 죽은 소망이 아닙니다.

 이와 같은 기록을 가지신 예수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반드시 믿든지 반대하든지 태도를 결정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거나 반대하며 살고 있습니다. 너무나 그들의 운명은 뚜렷한 것입니다. 천길만길 심판의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가 살아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인정하는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도 인정하고 아들을 부인하는 자는 아버지도 부인하십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에 인간은 죄의 노예요, 세상과 마귀의 종이요, 질병의 노예요, 저주의 종이요, 사망과 음부의 종이 되어 살았는데 이 굴레에서 우리를 벗기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기고 피흘려 이 모든 빚을 청산하시고 굴레에서 해방시키시고 다 이루어서 삼일 만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은 예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자유와 해방을 줄 분은 예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빌라도는 군중들에게 ‘이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할까?’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이 질문에 우리는 다 대답해야 합니다. 특별한 기록을 가지고서 태어나신 분, 우리를 위해서 고난 당하신 분, 확실히 죽었다가 부활하신 분, 역사에 찬란하게 비춰진 이분을 우리들은 믿고 구원받기로 결정한 것을 감사드립니다.
 아직 긍정적인 결정과 결심을 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도와주셔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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