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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메시아를 만났다
2007.10.28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요한복음 1장 43∼45절

예수님 만나지 못한 자 천국도 소유 못해
갈보리 십자가 매달리신 예수님 바라볼 때
부활·영생·천국 소유한 하나님 자녀 돼

 만남은 크고 작은 변화를 가져옵니다. 옷깃만 스쳐도 우연이 아니라고 하는데 서로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고 대화 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우리는 부모를 만나서 인생을 알게 되고, 선생님을 만나서 지식을 알게 되고, 부부를 만나서 사랑과 공동체의 삶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면 천국인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사울은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변화되어 위대한 바울 사도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삶 가운데 최고의 만남은 바로 예수님을 만나고 천국인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전도하시고 가르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결국에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가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삶을 우리가 면면히 만나고 매일같이 마음속에서 그리스도의 삶을 관조하면서 만나봐야 되는 것입니다.

 

 1. 복음을 증거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전도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시고 물질세계만 존재한다고 생각한 사람들의 마음을 바꿔 영적인 영원한 천국을 받아들이도록 하셨습니다. 타락한 이후 사람들은 영이 죽어서 영적인 눈도 어두워지고 영적인 귀도 멀었고 영적인 마음의 깨달음도 없어졌습니다. 물질적인 세계만 보고, 듣고, 만지고, 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질적 세계가 사라질 때는 아무것도 없는 무(無)가 되어버립니다. 이러한 절망적인 인간에게 예수님은 육신의 물질적인 세계 저 건너편에 영원한 영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시기를 원했고 바로 그 길이 예수님이라는 것도 알려 주셨습니다. 이러므로 예수님을 만나면 마음속에 하늘나라를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나라만 가지고 있던 우리들이 예수님을 만나야 하늘나라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한평생 왔다갔다 하면서 예수님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종교는 만났지만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천국을 소유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마음속에 받아 들이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전도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참 삶의 길입니다. 삶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려면 나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절대로 안됩니다. 예수님을 만나 진리의 빛을 받아 우주와 인생을 깨닫고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항상 우리를 가르치시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또 예수님은 우리들에게는 가르치는 예수님으로 항상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배우므로 성장하는 하늘나라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자라나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천국을 마음에 소유 했을지라도 계속해서 배워서 하늘나라 사람으로 장성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천국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대속의 은혜의 길을 알아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삶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고 천국인이 되면 믿지 않는 자는 멸망하는 것을 알게 되어 어찌하든지 그들을 구원하려고 애쓸수 있는 마음의 지식을 얻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 종말이 오고 반드시 심판이 오고 새로운 세상이 다가오며 그리스도가 강림하실 때 부활 승천한다는 지식을 얻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배워야 합니다.

 

 2. 치료하시는 예수님

 우리는 전도하는 그리스도를 만나고, 가르쳐주는 예수님만 만날뿐 아니라 치료하시는 예수님도 만나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와서 전도 받고 예수를 통해서 여러 가지 천국의 진리를 배우는 것은 참으로 행복하고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전도만 하고 가르치시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고 해방시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이나 장터에서나 귀신이란 귀신은 다 쫓아내셨습니다. 주님은 그대로 사람들을 내버려 놓지 않았습니다. 전도받고 천국에 대해서 교육을 받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귀신에 묶인 자를 해방시키기 위해서 귀신이란 귀신은 가는 곳마다 다 쫓아낸 것입니다.

 누가복음 4장 33절로 35절에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과 사람들이 함께 사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로 사람들은 하도 오래 귀신과 같이 살았기 때문에 귀신이 형제와 같고, 친척과 같고, 친구와 같이 되어서 아무 허물없이 귀신과 같이 지냅니다. 거짓말하는 귀신, 음란한 귀신, 방탕한 귀신, 속이는 귀신, 더러운 귀신, 악한 귀신, 귀신과 친척과 친구와 같이 살면서 귀신과 같이 사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오면 귀신이 불안하고 고통스러워서 견딜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복음만 전도하여 천국만 주시고 가르쳐서 천국인이 되게 만드실뿐 아니라 사람들이 귀신과 접촉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사람들이 귀신에게 묶여 있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주님은 귀신을 쫓아내십니다. 귀신이란 귀신은 다 쫓겨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실 때 마지막으로 부탁한 것도 너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너무 친숙하여 귀신인지, 친구인지 분별하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그런 장소에서 떠나 귀신을 쫓아내고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모든 병을 다 고치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의 병, 육체의 병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전도만 하고 말씀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 귀신을 쫓아내고 모든 병을 고치고 치유를 허락하여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병든 자가 오는 곳입니다. 마음에 병든 자, 육체에 병든 자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오는 곳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천국만 얻는 것이 아니라 귀신에게서 자유케 되고 온갖 병에서 고침을 받기 때문에 주님을 찾아 오는 것입니다. 주님은 심지어 죽은 자도 살리셨습니다. 12제자, 70인의 제자들에게도 복음을 전할 때는 반드시 귀신을 쫓아 내고 병을 고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복음을 전할 때 반드시 귀신 쫓아내는 역사와 병고치는 역사가 따르도록 하신 것입니다.

 

 3. 고난 당하시는 예수님

 그 다음 우리는 고난 당하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고난 당하는 예수님을 만나야 얼마나 주님이 우리를 사랑해 주셨는가를 잘 알수 있습니다. 가르치시고 전도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고치는 예수님을 만나면 기적을 체험하고 은혜를 받고 감사하지만, 고난의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 마음속이 무너지고 깨어져 주님의 그 감격적인 사랑에 흐느껴 울게 되고 헌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의 뜰에서 얻어맞고 모욕을 당하신 것을 생각하십시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무엇 때문에 대제사장의 뜰에 끌려가서 침뱉음을 당하고 얻어맞으셨습니까?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당신 자신을 희생제물로 내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모욕당한 것은 우리 때문입니다. 침뱉음을 받고 매를 맞은 것은 우리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마가복음 14장 63절로 65절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그 신성 모독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니 그들이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 어떤 사람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이르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인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욕을 당한 것은 바로 우리 때문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짊어지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대제사장들에게 맡긴 것입니다. 그들이 십자가에 못박도록 맡겨 놓으니 온갖 희롱을 당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우리가 바라보고 만날 때 예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수 있습니다. 빌라도의 뜰에서 채찍에 맞으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인간의 질병을 지시고 그 아픔을 당하셨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은 병상을 찾아가서 말씀합니다. “얘야, 네 암을 내가 대신 앓았다. 채찍에 맞을 때 내가 앓는 암을 내가 다 앓았으니 나를 믿고 암에서 고침 받아라!” 관절염으로 절뚝거리고 못걷는 사람에게 “얘야, 네 관절염으로 고통하는 네 병을 내가 채찍에 맞음으로 다 짊어졌다. 너의 아픔을 내가 다 담당했으니 아프지 마라. 일어나라!” 성경은 ‘저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했다’고 말했으며, ‘야훼께서 저로 상함받기를 원하사 우리의 질고를 당케 했다’고 말했으며 ‘저가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5장 14절로 15절에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고 한 것입니다.

 주님이 그 모진 채찍에 맞을 때마다 우리의 고통이 다 주님께 전가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채찍에 맞으신 것을 헛되게 만들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우리 대신 앓았는데 우리가 또 앓으면 예수님이 앓은 그 고통이 헛되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고통 당한 것이 허사로 돌아가지 않습니까? 주의 대가를 우리가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채찍에 맞았으므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대가를 반드시 요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원수 마귀를 대적하십시오. “원수 귀신아, 예수님이 채찍에 맞았으므로 나는 고침을 받았다. 너희 마귀의 산물인 질병은 물러갈지어다. 떠나가라. 나는 너에게 묶여 있을 수 없다. 네게 눌려 있을 수가 없다. 나는 자유와 해방을 얻은 사람이다. 나는 나은 사람이다. 주님의 은혜와 그 믿음으로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갈지어다” 우리가 진리를 알면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갈보리산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악인이 의인을, 죽을 인생이 영생하는 하나님을 못 박는 그런 우스꽝스러운 일이 일어날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사람이 자기를 지은 하나님을 못박습니까? 어떻게 죄덩어리인 사람이 의로운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박습니까? 어떻게 죽을 인생이 영생하는 하나님을 못박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그 자신을 내어 놓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의롭게 해주시기 위해서 스스로 죄인의 짐을 짊어 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스스로 죽음을 맞이한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되는 것입니다. 찌그러진 얼굴, 가시관을 쓰시고 피를 흘리는 그 모습 양손과 양발이 대못에 박혀서 늘어진 그 모습,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그 모습을 우리는 바라보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날 위하여 십자가에서 큰 고통을 당하신 예수님을 만나 보아야 우리의 마음이 깨뜨려 지고 우리가 얼마나 큰 죄인이며, 불의하고 추악하고 흉악한 나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나를 위해서 주님께서 얼마나 크신 사랑을 베풀었다는 것을 만남을 통하여 우리는 깨달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나 한사람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고난 당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만나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들어가신 무덤은 우리의 무덤입니다. 주님의 무덤은 바로 우리의 무덤인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은 예수님이 들어간 무덤은 우리가 들어갈 무덤인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파놓은 무덤인 것입니다. 우리 무덤에 들어가서 주님이 사흘만에 나오셨기 때문에 이제 우리가 들어갈 무덤은 없어져 버리고 만것입니다. “사망아 너희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희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바울이 말한 것처럼 사망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사망을 멸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당신을 통해서 무덤을 없애 버리고 부활 영생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무덤은 다시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다 철폐되었습니다. 그리스도와 개인적으로 만날 때 이런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전도하는 예수님을 만나서 천국을 얻고, 가르치는 예수님을 만나서 신앙이 성장하는 천국인이 되고, 치료하는 예수님을 만나서 귀신과 마귀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병에서 고침을 받고 죽었다가 부활한 예수님을 만나므로 십자가 고통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므로 영원한 소망과 기쁨과 희망을 마음속에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4. 예수님을 만남과 변화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죄에서 용서를 받고 의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무의미한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부활 영생 천국을 얻게 되었습니다.

 육신의 인생이 신령한 인생으로 변화되고 마귀의 종이 그리스도의 자녀가 되고 죽을 사람이 영생을 얻었으니 생각이 달라지고 말이 달라지고 행위가 달라질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변화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죽음 없는 천국 영원의 삶을 계속 살게 됩니다. 육신의 몸에 살다가 육신의 몸을 떠나서 영원한 몸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은 새사람을 입고 살게 됩니다. 중단 없는 삶입니다. 죽음으로 종결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구원받은 사람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서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죽음이 인생의 종말이 아니라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살게 됩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삶의 목적이요,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기쁘게 하는 것이 삶의 의미요,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 삶의 가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서 살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사는 것이 우리 삶의 전부가 됩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사는 우리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야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종교를 만나서 달라지지 않습니다. 교회를 왔다갔다 한다고 달라지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만나면 달라지는 것입니다. 전도하는 예수님을 만나면 천국을 얻게 되고, 가르치는 예수님을 만나면 천국인으로 성장하게 되고 치료하는 예수님을 만나면 귀신에서 놓여 나고 병고침을 받습니다. 고통 당하는 예수님을 만나면 사랑을 받게 되고 사랑으로 가슴이 무너지고 변화받아 순종하게 됩니다.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영원천국의 영광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변화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이 세상의 삶 속에 예수님이 빛으로 들어오시고 천국이 가슴속에 임하시고 말씀이 삶의 지혜와 지식이 되고 영원한 소망과 기쁨과 평안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지식이 아닙니다. 의식이 아닙니다. 종교가 아닙니다. 변화받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내가 보기에도 새것이 되고 이웃이 보기에도 새것이 되고 하나님 보시기에도 새것이 된 변화받은 사람이 되어야 크리스천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제가 그리스도 앞에 와서 그리스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십자가를 바라보며 변화받고 새사람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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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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