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태복음 6장 9절
십자가 보혈 통해 아버지와 자녀관계 형성
하나님처럼 기독인들도 거룩해져야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면 거룩해져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확실히 이해한 토대 위에서 힘차게 해야만 합니다. 불확실하고 의심에 찬 기도는 마귀의 공격의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힘찬 기도를 할 수 있을까요?
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성경에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부터 기도를 시작하라고 말합니다. 하늘나라가 과연 있느냐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누가 하늘나라에 갔다 와봤느냐. 하늘나라가 과연 있느냐. 우리는 달나라에 안 갔다와도 달나라를 갔다온 사람의 말을 들어 잘 알고 있습니다. 미국에 안 갔다와도 지도상에 미국이 있고 미국에 갔다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구약시대 이사야는 분명히 하나님의 나라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도 바울도 계시를 받았는데 이 땅이 아닌 하늘나라에 분명히 올라가서 하늘나라를 체험했습니다. 사도 요한도 밧모섬에 유배 당했을 때 그가 분명히 이 땅을 떠나서 하늘나라에 올라간 사건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는 막연한 장소가 아닙니다. 이론적인 장소가 아닙니다. 사람이 꾸며낸 소설이 아닙니다. 지상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처럼 하늘나라도 분명히 그 장소가 있고 번지가 있고 주소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장 1절로 4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놀라운 말씀을 하셨는데 “너희는 죽음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근심하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가 보증을 하고 내가 보증을 하노니 아버지 나라에 너희들이 있을 곳이 굉장히 많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친히 그 나라에 먼저 가셔서 우리가 있을 곳을 다 예비하시고 난 다음에 도로 우리에게 내려 오셔서 우리를 데리고 가서 주님 계신 곳에 함께 있게 하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주님과 영원히 사는 천국이 있는 것을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신의 세계가 우리에게 현실적인 것처럼 영적인 세계도 틀림없이 확실합니다. 거기에 갔다와본 사람들이 분명하게 우리에게 영적인 세계가 있는 것을 말씀해 주었고 예수님은 확실히 당신 몸으로 보증해 주셨습니다.
C. S. 루이스는 그의 책 ‘순전한 기독교’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당신이 역사를 읽는다면 이 땅에서 최선을 다했던 그리스도인은 천국에 대한 소망 가운데 살았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사도들, 복음 전도자들, 이들 모두는 그 마음이 천국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위대한 발자취를 남길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그리스도인들이 천국에 대한 소망이 사라졌기 때문에 세상에서 무기력해진 것입니다. 천국에 초점을 맞추십시오. 그러면 이 세상은 덤으로 얻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천국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천국도 얻고 이 세상 삶도 덤으로 얻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늘에 계신 그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고 말합니다. 구약시대 하나님은 모세에게 야훼 하나님으로 계시되었는데 출애굽기 3장 14절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야훼 하나님은 만군의 주 하나님, 창조주, 통치주, 심판주 하나님으로 나타났고 결코 아버지와 자식 관계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는 아버지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찾아 오셨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의 친아버지가 되신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었으니 이는 육신으로나 혈통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고 아버지께서 난 자들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보혈로 구원을 받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의 친자녀가 되었으니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라는 친밀한 관계를 갖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계신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우리 기도가 효과를 발휘하는 것입니다. 막연한 하나님,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이름도 주소도 모르는 하나님을 향해서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하면 얼마나 막막하겠습니까? 분명히 하나님이 계시고 하늘나라가 분명히 있고 그곳에 계신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라는 것을 알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식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줄 자가 있겠습니까?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으로 줄줄 알거든 하물며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지 않겠느냐.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는 것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2.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
거룩이란 세상의 더러움이 감히 다가오지 못하는 하나님의 신성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에 있는 우리들과 다른 것은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세상에 있는 우리들은 아담과 하와를 통해 타락해서 더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품은 거룩한 것입니다.
레위기 11장 45절에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야훼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거룩한 것처럼 거룩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은 어느 곳이나 거룩한 처소인 것입니다.
출애굽기 3장 5절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거느리고 요단을 건너서 요단평지로 갈 때 하나님의 군대 장관이 칼을 빼고 나타났습니다. 그때 여호수아가 그 하나님의 군대 장관 앞에 서서 “당신은 우리들 편입니까? 적군 편입니까?”하니 “나는 만군의 야훼 하나님 앞에 모시고 있는 군대 장관이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 신발을 벗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불려지는 곳은 거룩한 곳이기 때문에 신발을 벗으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한 곳입니다. 왜냐하면 역대하 7장 16절에 솔로몬이 하나님 성전을 짓고 기도할 때 “이는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의 성령이 계시기 때문에 거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살려면 거룩해야 됩니다. 거룩하지 않고는 하나님 근처에 갈 수가 없습니다. 세상은 음란하고 방탕하나 하나님은 진실로 깨끗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거룩한 하나님이기 때문에 우리가 아버지에게 나가려면 거룩한 마음을 가지고 나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성전에 나가려면 그들은 정결하고 거룩하게 해야 하나님의 성전에 나갈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 보혈로 씻고 거룩해야 우리 하나님께 나갈 수 있지 세상의 온갖 허랑방탕하게 살면서 죄덩어리 그대로 하나님께 나와서 부르짖어 봤자 하나님 가까이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죄가 가로막혀 있는 것입니다. 이 죄짐을 예수님의 보혈로 청산해야 거룩해 질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체는 지극히 거룩한 인격이므로 아무리 더욱 거룩하게 하려고 해도 거룩할 수 없습니다.
3.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 자체가 거룩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아 달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더 거룩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신 우리가 거룩하게 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5장 16절에 “오직 만군의 야훼는 정의로우시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일컬음을 받으시리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 자체는 조금도 흠도 없이 점도 없이 거룩하신 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거룩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하나님 가까이 간 우리들이 거룩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아! 하나님은 거룩하시구나!”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히 거룩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신 우리가 거룩하게 되면 온 세상에 그 거룩함을 더욱 빛나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15절로 16절에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을 믿는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은 거룩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받아야 마땅한 우리들이 오직 믿음으로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룩해져야 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우리들은 육신의 사람이 아니라 신령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세상 사람이 아니라 하늘나라 사람이 된 것입니다. 마귀의 자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더러운 자녀가 아니라 거룩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믿음으로 받았으면 그 다음부터는 거룩하게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거룩하고, 말이 거룩하고 행동이 거룩해야 되는 것입니다. 거룩함을 통해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고 거룩함을 통해서 기도가 응답받을 수 있고 거룩함을 통해서 믿음이 역사할 수 있고 거룩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한국에 1200만 성도가 있지만 우리 한국 기독교회가 한국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은 믿음으로 구원은 받았으나 거룩한 삶을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섞여 살기 때문에 기도해도 힘이 없고 믿음에도 힘이 없고 전도에도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거룩한 곳에는 하나님이 역사하시지만 세상과 타협해서 세상이 들어와 점령된 신앙생활 속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결코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과 구분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세상과 타협할 수 없습니다. 거룩해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시대에 트라이얀 황제의 기독교인에 대한 조사 보고서가 아직까지도 남아 있습니다. 당시 많은 기독교인들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핍박을 받고 있을 때 황제는 기독교인에 대한 정확한 실상을 보고하라고 지시했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대략 이렇습니다. “그들은 결코 도적질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간음을 행하지 않습니다. 황제시여! 그들은 빚을 지면 반드시 갚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사랑했습니다” 이처럼 높은 도덕관을 가진 기독교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트라이얀 황제는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려던 생각을 바꾸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럴 때 세상이 변화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하지 아니하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까?
우리가 세상과 타협하면 세상이 어떻게 변화될 수 있는 것입니까?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은 거룩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말씀대로 성령의 능력으로 거룩하게 되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고린도전서 6장 19절로 20절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3절에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이 들어와서 있는 성전입니다. 옛날에 세상에는 귀신이 들어와 있어 온갖 세상의 추악한 일을 다 했지만 이제는 보혈로 씻음을 받고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사랑의 아들 나라로 옮긴바 되고 우리 속에 하나님의 거룩한 성령이 와서 계시므로 성령이 우리를 통해서 역사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거룩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말씀도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우상에 절하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네 이웃을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을 탐하지 말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가 거룩하고 진실하고 참된 삶을 살아야 세상을 변화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 속에는 거룩한 하나님의 성령이 와서 계신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려면 우리는 거룩해야 되는 것입니다.
수도 파이프가 막히면 저수지 물이 흘러 들어올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이 나타나는 수도 파이프입니다. 우리가 더러운 것으로 막혀 있으면 우리를 통하여 성령이 역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하면 거룩한 성령이 우리를 통해서 기도로 나타나시고 믿음으로 나타나시고 전도로 나타나시고 생활로 나타나셔서 하나님의 역사가 임합니다. 사람들마다 ‘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며 하나님이 같이 하는 사람’이라고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전된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져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4장 4절로 5절에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매일 기도해야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말씀은 바로 하나님이기 때문에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과 교통하고 교제하고 그리고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대화하기 때문에 우리가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쁜 사람과 교제하면 함께 나빠지는 것입니다. 술꾼하고 교제하면 같이 술주정뱅이가 되는 것입니다. 도박꾼하고 교제하면 같이 도박을 하게 되고 음란한 자와 교제하면 같이 음행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와 교제하느냐에 따라서 그 영향력을 받게 되는데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면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집니다. 오늘날 아무리 교회에 왔다갔다 하더라도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고 기도하지 아니하면 세상이 들어와서 우리를 점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오물투성이 속에 살아도 내가 늘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있으면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넘쳐나는 거룩의 역사가 말씀을 통하여 기도를 통하여 나타나기 때문에 세상의 더러움이 말끔히 씻어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예배와 찬양을 통하여 하나님이 임재하시므로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은 거룩하니 발에서 신발을 벗으라고 말씀한 것처럼 하나님이 어디에 임재하십니까? 예배드리는 곳에 하나님이 오시는 것입니다. 찬양 드리는 곳에 하나님이 오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20절에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찬송 중에 계시는 주라고 말씀했으니 오늘 그러므로 우리가 예배드리는 이 자리는 하나님이 와 계시고 우리가 찬양드리는 이 자리는 하나님이 와 계시므로 이 자리는 거룩한 곳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에 참석하면 우리가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예배에 참석하면 세상에서 더러워진 심신이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이 모두 다 쫓겨나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교회 오기 전에 심신이 마귀에 눌려서 무겁더라도 예배 드리는 동안에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령이 임하시므로 마귀가 다 쫓겨나가 버리고 가벼워지고 즐거워지고 평안해지고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와 찬송을 통해서 우리는 거룩해지고 변화 받는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재상이었던 글래드스턴은 “나에게는 예배석이 대영제국의 수상석보다 더 존귀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는 영국의 수상이었지만 주님을 잘 믿는 사람으로 교회에 가서 앉아있는 그 자리가 영국 수상으로 앉아있는 그 자리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배 자리는 그 어떤 것보다 존귀합니다. 왜냐하면 예배와 찬양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살며 세속과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고 우리는 정의롭고 정직하고 거룩하고 충성되며 탐욕을 버리도록 마음에 결단을 내려야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에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고 육체의 욕망이 다가오면 예수의 이름으로 대적해야 되는 것입니다. 안 믿을 때는 대적할 수 있는 힘이 없었습니다. 믿는 우리들은 이제 마귀를 대적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에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저가 너를 피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로 24절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말씀합니다.
명령인 것입니다. 결단을 내리라는 것입니다. 마음에 결심을 하지 않고 우왕좌왕하면 안됩니다. 나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고 살겠다고 마음에 결정을 내려야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스티븐 아터번이 쓴 ‘모든 남자의 참을 수 없는 유혹’이라는 책에는 마약과 알코올 중독자였다가 회심하여 설교자가 된 스티브 힐의 고백이 담겨있습니다. 그는 매일 위스키를 병째 마실 정도로 심한 알코올 중독자에 마약 중독자였습니다. 그러니 그의 생활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타락하여 음란하고 방탕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모든 악의 생활을 청산한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마약을 밝히는 욕망에서 나를 절대 건져 주시지 않았다. 절대로 말이다. 오히려 다시는 마약에 손대지 않고 술을 마시지 않기로 내가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하나님이 우리의 욕망을 다스려주실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분은 하실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먼저 결단을 내려야 했다. 술과 마약을 끊기로, 그리고 가정과 아내에게 헌신하기로 내가 먼저 결단을 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나를 도와 주셨다”
거룩이란 이처럼 내가 먼저 선택하고 결단을 내려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결단을 내리고 거룩하게 살겠다고 결심을 하고 나면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믿고 행해야 하나님이 나를 밀어 주시고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술을 마시면서 “하나님 안 마시게 해주시옵소서”라고 아무리 기도해야 소용이 없습니다. 술잔을 던져버려야 안 마실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담배를 입에 물고서 덜덜 떨면서 “안 피게 하여 주시옵소서. 안 피게 하여 주시옵소서”하면 하나님은 도와주지 않습니다. 담배를 꺾어 버리고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고 “이제부터 안 피겠사오니 도와주시옵소서”라고 결심하면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음란한 곳에 안가기로 결심을 하고 돌아서야 하나님이 힘을 주시지 음란한 곳에 들어가서 살면서 “아버지 다시 안 들어오게 해주시옵소서”라고 해봤자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먼저 한발자국을 떼야 두발자국, 세발자국을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성령 충만하여 성령으로 살며 세속과 결단을 하고 싸워야만 되는 것입니다.
거룩함이 없이는 하나님 근처에 갈수도 없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역사하실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하고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야 되는데 아버지의 뜻은 거룩함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막연한 하나님이 아닌 것입니다. 이 세상과 똑같이 하늘나라가 있고 아버지는 하늘나라 보좌에 앉아 계시면서 온 천하에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을 찾으시고 귀를 기울이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섬기는 자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고 난 다음 첫째도 거룩해야 되고, 둘째도 거룩해야 되고, 셋째도 거룩함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거룩함이 없이는 하나님을 배울 수가 없습니다. 거룩함이 없이는 세상을 변화 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성령으로 충만하고 말씀과 기도로써 찬양과 예배를 통해서 마음에 결단하고 거룩한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기도-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운 우리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은 항상 거룩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을 받았으나 말씀과 기도와 찬양과 예배와 성령의 능력으로 거룩, 거룩, 거룩하게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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