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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가지 최상의 복 (Ⅲ)
2007.07.2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장 9∼16절

 

 우리는 복있는 사람의 마음 가짐에 대하여 2주째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복 있는 사람의 삶의 태도’에 관하여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겠습니다.

 

 7.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TV를 틀어 보면 거의 태반이 죽고 죽이는 스토리, 전쟁하는 영화가 나옵니다. 이와같이 이 세상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화평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서로 대화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로이엘 호우(Reuel Howe)는 그의 책 「대화의 기적」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몸에 피가 흘러야 한다면 사랑에는 대화가 흘러야 삽니다. 피가 멈추어 섰을 때 몸이 죽기 시작하는 것처럼 만약 대화가 멈추어 버린다면 사랑은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대화는 이미 죽은 관계까지 회복할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이 대화의 기적입니다” 이처럼 대화를 통해 우리는 오해와 미워하는 사람과 화평할 수 있고 원수도 화평으로 인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지난 5월 15일 취업포털 커리어(career.co.kr)에서는 직장인 1574명을 대상으로 가족 간의 대화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절반인 47.8%는 가족과의 대화 시간이 하루에 평균 30분도 되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10분도 못 되는 사람이 20%였고, 30분에서 1시간 미만인 경우가 30%에 불과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족과 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더욱이 대화를 할 때도 직접 얼굴과 얼굴을 마주대고 대화하기 보다는 전화를 통해서 대화를 한다는 사람들이 62.2%가 되고, 인터넷이나 이메일을 통해서 가족 간에 대화한다는 경우도 20%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커리어넷 CEO 김기태 대표이사는 “가족 간의 대화단절은 더 많은 감정을 쌓이게 할 수 있어 가족 내 갈등을 일으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가족 간에 화평하기 위해서는 가족 간에 대화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일가와 친척 간에 머리를 맞대고 대화를 하면 많은 오해가 풀리고 이해하고 동정하고 사랑할 수 있는 은혜를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웃 간에도 무조건 주먹을 휘둘러서 내 개인의 이익만 내놓지 말고 대화를 통해서 서로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고 이해할 것은 이해하고, 이해 못할 것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대화가 있어야 평화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우리와 대화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이사야에 보면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와 대화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대화하고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나오면 모든 죄를 값 없이 은혜로 깨끗이 정하게 해주시고 구원을 해주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대화하면 흑암이 광명으로, 무질서가 질서로, 죽음이 생명으로, 파괴가 건설로, 추한 것이 아름다움으로 변화될 수 있는 기적을 가져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카네기 공대에서는 졸업생들 가운데 성공한 사람들을 조사하여 그 원인을 분석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공하는 데 전문 지식이나 기술은 15%밖에 영향을 주지 않았으며, 나머지 85%는 인간 관계였다” 아무리 머리가 좋고, 기술이 탁월해도 그것이 성공을 가져 오는데는 15%밖에 영향력이 없다, 인간성이 좋아야 성공하는 것이 85%라고 말한 것입니다. 성공적인 인간관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세 가지 방문’을 잘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입의 방문’, ‘손의 방문’, 그리고 ‘발의 방문’입니다. ‘입의 방문’은 전화나 말로 상대방을 칭찬하고 용기를 주는 방법입니다. ‘손의 방문’이라는 것은 편지를 쓰거나 이메일을 통해 사랑하는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고, ‘발의 방문’은 상대가 병들거나 어려움이 있을 때 찾아가는 것입니다. 이 중에서 서로간에 화평 하기 위해서는 특히 ‘입의 방문’이 절대로 필요한데 ‘입의 방문’이라는 것은 대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대화를 통해서 화평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가족 간에 이웃 간에 심지어 원수 간에도 대화를 통해 화평을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화평케 되기 위해서는 서로 비평하지 말고, 판단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8.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의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몸찢기고 피흘려 우리 일생의 죄악을 다 청산한 그 공로가 의로움인 것입니다. 우리의 행위가 의롭게 되지 않습니다. 의는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그러나 의라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서 영원히 용서해 주었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 의가 있는 것입니다. 의라는 것은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예수님을 생각하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자랑하고 살면 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의로우신 예수님을 섬기고 모시기 때문에 핍박을 당하고 직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사회생활에서 고통을 당하면 이에대해 성경에서는 “복이 있다. 예수님 때문에 당하는 고통은 언제나 복으로 돌아온다.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우리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때문에 욕을 얻어먹고 핍박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면 그만큼 하늘에 복을 쌓아 놓는다”고 말합니다.

 마태복음 5장 11절에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왜 복이 있다고 할까요? 바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잘 믿어서 세상 사람에게 욕을 얻어먹고 오해 당하고, 핍박당하고, 고통을 당하는 것은 진짜로 예수 잘 믿는 사람이라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최고의 상입니다. 의인이 복이 있는 것은 성령님의 위로를 받기 때문인 것입니다. 고난이 더하면 더할수록 성령의 위로도 더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6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롭게 살다가 핍박을 받으면 천국 시민의 확증을 받기 때문에 복을 받습니다. 세상사람 같으면 세상이 자기편이니까 끌어 안지만 세상이 볼 때 자기편이 아니기 때문에 핍박한다는 말입니다. 핍박을 당하는 이유는 천국시민이 되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천국 시민증을 흔들어 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버림을 당하나 하나님은 시민인 것을 확증해 주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20절에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의로운 삶을 살다가 핍박을 받을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춤을 추라고 말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핍박을 받고 욕을 얻어먹고 손가락질을 당하면 슬퍼하고 통탄하고 괴로워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안에서 의로운 삶을 얻은 우리들이 핍박을 받고 고난 당할 때는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춤을 추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의로운 삶을 살다가 핍박을 받을 때 하늘에서는 엄청난 상을 예비하고 축복해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9. 소금과 빛 된 그리스도인

 소금은 맛을 내기 때문에 소금인 것입니다. 우리가 음식 먹을 때 소금없이 음식을 먹을 수 없는 것처럼 삶을 맛있게 하는 양념같은 것이 소금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말하기를 너희는 소금같은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믿는 사람이 어느 곳에 가나 맛을 내는 양념같은 사람이 되어야지 예수믿는 사람이 쓸개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여기가도 사람이 고통을 당하게 하고, 저기가도 사람을 이간시켜 놓고 분리시키고 사람이 그 사람을 만나면 얼굴을 찌푸리고 싱겁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어느 곳에 가든 양념같은 사람이 되어서 그 모임을 즐겁게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만든 소금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든 소금이기 때문에 자신을 알고 소금의 역할을 하면 어느 곳에 가나 양념같은 사람이 되어서 환영을 받고 귀하게 여김을 받습니다.

 소금은 또한 부패를 막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이 만든 소금인 우리는 부패가 꽉 들어찬 세상에서 정의와 성결함을 가져오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져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함께 섞여서 썩어 버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소금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나는 소금이다. 나는 부패할 수가 없고 나는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이 되어야 된다”라고 말해야 됩니다.

 마태복음 5장 13절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한국에 5만 교회, 10만 주의 종, 1200만 성도를 둔 것은 그만큼 소금을 한국에 많이 뿌려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정치, 경제, 교육, 문화, 군사, 산업 모든 면에 부패하지 않도록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소금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면 우리 개인과 사회와 국가에 그리스도의 영광이 새롭게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또 성경은 우리가 빛 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빛이라”고 말씀합니다. 옛날에는 마귀의 지배를 받은 어두움이었습니다. 캄캄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날 주님 안에서 빛이 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의 등대되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예수믿는 사람을 하나님이 빛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서 죄인이 예수를 믿고 의인이 되고 천국가는 길을 밝히 보여주고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등대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우리가 빛이라는 것은 죽음 건너편을 비취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죽으면서 모든 삶이 끝이 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건너편을 비췹니다.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을 가르칩니다.

 죽음 건너편에 영생이 있는 것을 선포하는 것이 우리의 빛된 사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팔복을 받고 소금과 빛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내신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복있는 사람이라고 하시는 삶은 참으로 영원히 복이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 땅에서 뿐 아니라 영원 천국까지 복으로 넘치는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주님께서 팔복산에서 여덟 가지 복을 말씀하시고 이 복을 받은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소금이 되고 빛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팔복을 생각하고 마음속에 음미하고 그 가르침을 따라 소금과 빛의 삶을 살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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