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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가지 최상의 복 (Ⅱ)
2007.07.15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6∼8절


율법의 저주아래 있었던 우리 자신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의지할 때
의로운 인생으로 변화 받아


 인생의 복은 그릇이 준비된 사람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그릇이 준비 안 된 사람에게 내린 복은 오히려 복이 아니라 화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길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4.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의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저분은 의인이다. 의로운 사람이다”라고 말하는데 엄격한 의미에서 의라는 것은 평생에 죄를 한 번도 지은 적이 없는 상태며, 마귀의 참소를 전혀 받지 않는 인격이며, 하나님 앞에 부끄럼 없이 당당히 설 수 있는 자격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사야 64장 6절에는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많은 수양이나 종교적 신앙을 통해서 의인이 되고자 합니다만 그렇게 하면 할수록 죄가 더 드러납니다.

 갈라디아서 3장 10절에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모두 다 지켜야 의인이 되는데 율법을 하나라도 범하면 죄인이요, 저주아래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0절은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거울을 들여다 보십시오. 거울은 우리의 얼굴에 흠점을 발견해주지만 절대로 씻어 주지는 않습니다. 물이 씻어주지 거울은 씻어주지 않습니다. 율법은 거울과 같아서 우리의 잘못된 점을 지적해주지만 우리를 깨끗하게 해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거울에 비추어서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로마서 3장 10절로 12절에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행위로 말미암아 의인이 되어서 하나님 앞에 서고자 하는 사람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 아담 후에 수양과 도덕과 노력으로 의인이 된 사람은 없기 때문에 아무도 하나님 앞에 설수 없습니다. 이러한 인간을 의롭게 만들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죄없이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태어나셔서 이 땅에 오셨고 우리의 재물이 되어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다 덮어 쓰고 형벌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고난당하신 것은 전부 우리 때문입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서 6절 사이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영원한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제물이 되셔서 영원히 청산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통해서 우리의 죄는 하루 이틀이 아니라 우리 일생이 아니라 영원히 용서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지 않고는 절대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의로운 신분을 선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행위의 대가로 받은 것이 아니라 선물로 받게 된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로 9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니, 죄인이 믿음으로 의로움을 선물로 받으면 너무하지 않느냐. 그런 공짜가 어디 있느냐?”라고 말씀하시면 “너무나 크기 때문에 공짜로 받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계산할 수 없고 돈으로 측량할 수 없는 것은 공짜로 받는 도리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우리는 의로움을 선물로 받는 것이지 대가를 지불하고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이라도 죄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손 그대로라도 와서 예수를 믿으면 용서를 선물로 받고 의로움을 선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진짜 의로운 사람이나 선물로 의로움을 받은 사람이나 받은 것은 한가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믿고 의인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의인이 되고나면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 주셔서 의롭게 살수있는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의롭게 될수있는 힘은 성령이 오셔야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우리가 의롭게 살 수가 없습니다. 예수 믿고 의롭게 된 사람이 의로운 열매를 맺고 정의롭게 살 수 있는 길은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며, 의지할 때 성령이 힘을 주셔서 우리를 의롭게 살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1998년 미얀마 즉, 옛날 버마의 한 불교 승려, 파울루라는 사람은 황열병과 말라리아로 죽었다가 살아났는데, 그는 죽은지 3일 만에 화장하기 직전에 관에서 벌떡 일어나서 그 동안 천국과 지옥을 보고 경험한 사실을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거짓말에 속고 살아 왔습니다. 저는 우리 조상들이 종류를 알 수 없는 불길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먼저 간 많은 동료들이 불꽃 가운데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사건은 그 지역 전체를 충격 속에 몰아넣었습니다. 파울루는 그 후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시작했고, 이것을 목격한 3000여 명의 스님들이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불교계와 정부는 발칵 뒤집어지고 파울루는 체포되었습니다. 지금 미얀마에서 그의 테이프를 듣는 일은 심각한 범죄 행위가 됩니다. 이러한 일은 ‘아시안 소수민족 선교회’를 통해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인간은 많은 수양이나 종교적 신앙을 통해 의인이 되고자 합니다. 그러나 구원은 예수 믿는 길밖에 없습니다. 의인은 용서받지 않고는 의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의로움은 행위로써 이룰수 없으므로 믿음으로 선물로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온 천하 인간에게 구원받을 만한 이름을 주신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의롭게 살기를 사모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의로움을 선물로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로움을 선물로 받은 사람에게 하나님이 곧장 성령을 보내 주셔서 성령을 통해서 의롭게 살 수 있는 능력과 힘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롭게 되기를 갈망하는 사람은 누구를 불문하고 예수님께 나오면 만족하게 되고 기쁘게 되고 의인이 되고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서게 되고 저 세상 천국 영원한 영광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5.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6장 14절로 15절에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남을 용서하지 않고 심판하면 자기도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습니다. 하루는 성전 뜰에서 예수님이 말씀을 가르치고 있는데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이 바리새교인, 사두개교인, 교법사들에게 끌려 왔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말하기를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성경에는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허리를 굽혀 글을 썼습니다. “당신들 중에 계명에 비춰봐서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너희가 율법으로 이 여자를 정죄하니까 나도 너를 율법으로 정죄하겠다.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쳐라!” 그러자 큰 자부터 작은 자까지 다 돌을 놔버리고 걸음아 날 살려라고 달아나 버리고 만 것입니다. 자기 죄가 드러나니 주님 앞에 설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지옥가는 것은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죄가 드러나므로 견딜 수가 없어서 제발로 지옥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어서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한참 만에 예수님께서 “여자여 고개를 들라. 너를 정죄하는 자가 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이 뒤를 돌아보았을 때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요 8:11) 주님은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교훈을 해서 다시는 죄짓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원했지 그 자리에서 돌로 쳐 죽이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6장 37절에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인 이상 죄를 짓지 않는 의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남의 죄를 보고서 비평하고 정죄하고 돌로 치면 반드시 내가 정죄 받고 돌로 얻어 맞을 때가 다가옵니다. 그러나 내가 이웃을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고 위로해서 제기하게 도와주면 내가 쓰러졌을 때 사람들은 내가 한 그대로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다시 일으켜 세워준 도움을 베풀어 주게 될 것입니다.

 시내산 밑에 사는 사람과 갈보리산 밑에 사는 사람이 다릅니다. 구약은 시내산 밑에서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엄중한 계명대로 살고 그 계명대로 살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갈보리산 밑에 가면 예수님이 “너가 십계명을 어기고 지은 죄를 내가 다 맡았다. 죄의 빚을 내가 다 청산했으니 너는 나를 믿고 빚에서 해방되라”고 하십니다. 용서와 사랑이 갈보리산에 넘쳐납니다. 시내산 밑에는 불이 산을 두르고 번개가 치고 뇌성벽력이 났습니다만 갈보리산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찢기고 피흘려서 달려있는 모습만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통해서 용서와 사랑이 강물같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내가 너의 죄의 빚을 갚았다. 죄의 빚은 죄의 빚이다. 갚기는 갚아야 된다. 네가 갚든지 내가 갚든지 갚아야 되는데 너는 못갚지 않느냐. 그러므로 내가 대신 갚아 주었으니 나를 받아들이고 죄에서 해방되라”

 오늘 우리는 갈보리 산 밑에서 설교합니다. 갈보리 산에는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받은 사람을 보고 주님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주님이 용서와 의와 사랑을 베푸는 이 시대에 어떻게 그런 말을 합니까? 구약에는 죄를 지으면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드렸지만은 하나님의 아들이 영원한 제사를 드려서 영원히 우리 죄를 용서하셨으므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가면 영원한 용서와 의를 받는데 어떻게 정죄하는 설교를 합니까? 예수를 믿어 의롭게 되면 하나님이 후속조치로 성령을 보내 주셔서 성령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면 성령이 우리 연약함을 도와주시므로 우리가 의롭게 살 수있는 힘을 얻는 것이지 정죄하고 심판해서 전부다 기를 죽여 놓는다고 해서 사람들이 올바르게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회개해도 다시 일어나서 또 죄짓고 회개해도 또 죄짓는 것은 회개해도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힘이 어디서 옵니까? 성령으로 말미암아 오는 것이지 나로 말미암아 오지 않습니다. 용서와 의는 선물로 받고 그 다음 선물로 모셔들이므로 성령이 도우셔서 우리가 힘을 얻을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내산 밑에서 사는 사람이 되지 말고 갈보리 산밑에 사는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태복음 7장 3절에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고 했고 에베소서 4장 32절에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친절하게 하고 불쌍히 여기고 용서해 준 것처럼 우리도 용서와 사랑을 주면 용서와 사랑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심판과 정죄를 주면 심판과 정죄가 우리에게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1999년 코소보전쟁 중 미군 세 사람이 포로로 잡혔습니다. 그 중 한 명인 크리스토퍼 소토운은 석방될 당시 자기를 가두었던 보초를 위해 꼭 기도를 해주고 떠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그는 허락을 받아 그 감옥의 보초에게, 몹시 고통을 주고 괴롭힌 보초에게 가서 “당신이 나를 괴롭힌 것을 용서합니다. 나는 예수 이름으로 당신을 축복합니다”라고 기도하고 돌아 섰습니다. 다른 동료들이 손가락질했습니다. “야 이 자식아! 죽도록 박대를 당하고 발길로 채이고 매로 때린 그 사람을 용서하고 축복하고 돌아오다니 어떤 심보를 가졌기에 그러냐” 그러자 그는 말했습니다. “나를 위해서 그렇게 했다. 내가 용서 안하고, 축복 안하고 미국으로 돌아가면 평생에 원한이 내 마음에 쌓여서 쓴물을 낼 것이니까 내가 그것을 청산하고 돌아가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자신을 학대하던 사람에 대해 분노와 원한 대신 축복의 기도를 해주고 떠난 그 군인은 고향에 돌아가서 마음에 안정을 누구보다 빨리 얻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동료들은 내내 정신적인 고통을 당하고 육체적인 고통을 당하고 가정이 파괴되고 고난을 당했으나 용서한 이 사람은 건전한 생활을 시작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용서와 건강의 관계를 40년 동안 연구해 온 북 캘리포니아의 태도치유연구센터가 내린 결론에 의하면 ‘용서는 건강도 회복시켜 준다’는 것입니다. 용서해야 마음도 건강하고 육체도 건강하고 가정도 건강해 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긍휼히 여김을 받게 됩니다. 내가 긍휼히 여기면 이웃으로부터 긍휼을 당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보아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기 위해서 얼마나 처절하게 몸찢기고 피흘렸는지를 생각하고 이웃을 용서하고 긍휼히 여겨야 됩니다.

 

 6.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소련의 우주인이 우주에 올라 갔을 때 아무리 살펴봐도 하나님은 안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미국 우주인은 우주선을 타고 하늘에 올라가고 난 다음 온천지에 하나님이 가득하다고 말했습니다. 똑같은 우주선을 타고 하늘에 올라갔는데 한 사람은 하나님이 보이지도 않는다고 말하고 한 사람은 온천지에 하나님이 가득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마음의 상태인 것입니다. 우리가 슬픈 마음을 가지면 나무도 슬프게 보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보면 나무가 춤추는 것 같습니다. 환경이 달라진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달라진 것입니다. 똑같은 세상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수천가지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기쁜 사람은 기쁜 세상을 보고, 슬픈 사람은 슬픈 세상을 보고, 미워하는 사람은 미워하는 세상을 보고 온갖 환경은 우리 마음이 만들어 내는 창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정결하면 하나님이 마음속에 비춰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광대하시므로 우리의 지식이나 인간의 지혜나 총명이나 모략이나 재능을 통해서는 볼 수가 없습니다.

 예레미야 17장 9절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이라고 했는데 사람의 마음이 구원받기 전에는 만물보다 부패하고 더러운 썩은 물이기 때문에 하늘이 비취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내 주먹을 믿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해를 봐도 하나님이 보이고 달을 봐도 하나님이 보이고 별들을 봐도 하나님이 보이고 꽃 한포기를 봐도 “아∼ 하나님이 묘하게 지으셨구나. 사람들을 봐도 하나님이 얼마나 이쁘고 아름답게 사람을 만드셨느냐”라고 말합니다.

 모든 것을 아름답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남편을 아름답게 보십시오. 아내를 아름답게 보십시오. 자식을 아름답게 보십시오. 이웃을 아름답게 보십시오. 밉다고 생각하면 모든 것이 밉게 보이는 것입니다. 아름답다고 생각하면 미운 가운데도 모든 아름다운 것이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마음이 나의 환경을 바라보게 하고 결정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고 말한 것입니다.

 집에서 손자나 손녀, 이제 말을 배우기 시작한 어린이들을 데리고서 가정예배를 드리십시오. 아이들은 찬송하면 같이 따라하고 기도하면 같이 기도하고 ‘아멘’하면 같이 ‘아멘’하며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의 마음은 오염되지 않았기 때문에 복음이 그대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대로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노인들의 마음은 이 세상에서 오래 살면서 오염되고 굳어졌기 때문에 복음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마음은 옥토가 되기 때문에 심어져서 곧장 열매를 맺게 됩니다. 교회가 장차 희망을 두려면 어린 아이들에게 힘을 많이 쏟고 복음을 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학교를 등한히 하면 그 교회는 장래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학교 어린아이들에게 열심히 복음을 증거하면 어릴때 심은 씨앗은 나중에 커서 방황을 하다가도 반드시 도로 돌아오고 그 씨앗이 자라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은 지혜와 지식으로 깨닫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이 마음에 계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못보고 예수님을 안봤는데 어떻게 믿을수 있을까요? 그건 바로 성령이 마음에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 복음의 진리는 계시적인 지식이지 인간이 연구하고 배워서 얻는 지식이 아닌 것입니다. 그 계시가 깨끗한 마음에 임하지만 혼탁한 마음에는 임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깨끗한 마음이 되기 위해서는 회개하고 보혈로 씻으면 깨끗히 되고 성령이 임하셔서 하나님을 깨달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씻을 수 있는 세제는 세상에서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도 마음 바탕이 그렇지 않는데 어떻게 합니까?

 원래 아담과 하와의 자손으로 태어난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죄로 말미암아 부패하고 돌이킬 수 없이 썩었는데 아무리 인간의 수양과 도덕과 노력으로 근본 바탕이 변하겠습니까? 안 변합니다. 그 근본 바탕이 변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보혈을 믿고 성령이 오셔야만 되는 것입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거듭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보혈로 씻고 성령이 오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예수 믿는 사람은 이전 아담의 사람을 십자가에서 청산해 버림으로 새로 피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회개하고 보혈로 씻으면 성령이 오셔서 우리 마음을 깨끗하게 만드시고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이 비춰오는 것입니다.

 디도서 3장 5절로 6절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보혈로 씻음 받으면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셔서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을 배울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심령 속에서 바라보고 느끼고 그 은혜에 감격하고 감사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혈로 씻으면 성령이 오셔서 하나님을 계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의를 사모하는 자는 만족하게 되는 것이 의를 사모하고 사모하다가 힘으로 능으로도 안되는 것을 깨닫고 예수님을 믿어서 100% 의를 선물로 받았기 때문에 만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어 의롭게 되는 것은 100% 선물입니다. 하나도 우리의 공로로 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용서받고 의롭다함을 얻는 것입니다. 기막힌 복음이요, 이런 축복은 천하 인간에게 주신 적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믿음으로 용서와 의를 받고 영광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볼 수 있는 것입니다.

 남편을 긍휼히 보십시오. 아내를 긍휼히 보십시오. 자식을, 부모를 불쌍히 보십시오.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불쌍합니다. 시내산에서 살지 말고 갈보리산 밑에서 살면서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 속에 사는 크리스천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죄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부패한 죄인으로 태어났지만 예수님께서 그 피로 씻겨주시고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이 주시는 이 놀라운 축복이 우리의 마음속에 넘치게 하여 주시옵고 우리가 하늘의 복을 받아 복있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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