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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노력
2007.05.13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중략>…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에베소서 5장 22∼33절


가정은 사회·국가의 근본 역할
부부를 동등한 위치로 창조하신 하나님
서로 이해하며 노력할 때 가정 행복해져


 가정이란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혈연으로 뭉친 모임입니다. 그 때문에 그 어떤 단체보다 친밀하고 따뜻하고 사랑이 있는 곳이 가정입니다. 그런 가정이 오늘에 와서는 너무나 쉽게 무너지고 해체되고 있습니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미국 뉴욕 항에서 대통령과 국무위원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이 도열하여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군함 한 대가 도착했고 군악대의 연주와 예포가 울려퍼졌습니다. 그런데 배에서 한 구의 유해가 내려졌습니다. 그 유해는 위대했던 정치가도, 전쟁에서 공을 세운 장군도 아니었습니다. 평범한 시민으로 단지 그가 작사한 한 곡의 노래 때문에 이처럼 엄청난 예우를 받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존 하워드 패인으로 ‘홈 스위트 홈’의 작사자였고 그 노래는 우리도 잘 아는 노래입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라는 노래입니다. 유해 앞에서 미국 대통령은 “그는 이 땅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한 것인지, 이 땅에서 지내는 일들 가운데 무엇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스위트 홈’ 바로 달콤한 가정인 것입니다. 그런데 가정이 오늘에 와서는 너무나 쉽게 무너지고 해체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슬픔이요, 비극입니다.

 

 1. 부부는 신성한 결합

 부부란 무엇입니까? 오늘날 사람들은 부부를 동물적인 결합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동물의 짝짓기는 종의 번식을 위한 것이지만 인간은 후손의 번식을 위해서만 결혼하고 부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결혼은 하나님이 친히 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기 2장 18절에 “야훼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회 비평가 존 러스킨은 “인류 역사는 세계의 역사가 아니라 가정의 역사이다. 한 나라의 수준은 그 나라의 가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갈 수 없고, 한 나라의 생존은 가정의 생존 여부에 달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정은 국가의 근본 세포를 형성한다”고 했는데, 이는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이 많아야 건강한 국가가 되기 때문입니다. 가정이 이처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결혼을 해서 가정을 세우고 그 가정의 화합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 드릴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었을 때는 그냥 흙으로 지어서 부부를 만든것이 아닙니다. 남자를 짓고 난 다음 하나님께서 남자의 옆구리 뼈를 취해서 여자를 지었다고 한 것입니다. 뼈로 지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제퍼슨의 자손들은 매년 그 조상을 기리는 모임을 가졌는데 어느해엔가 얼토당토않게 흑인 제퍼슨들이 나와서 자기들도 동참을 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퍼슨은 백인인데  흑인이 제퍼슨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여기에 참여하냐고 해서 논란이 되었습니다. 결국 흑인들이 법정에 고소를 했고 DNA 검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그 무덤속 제퍼슨은 다 썩어 버리고 뼈만 남아 뼈의 DNA를 검사해보니까 흑인 제퍼슨하고 DNA가 똑같습니다. 제퍼슨 대통령이 부인과 사별한 뒤 혼자 생활할때 가정부였던 흑인 부인하고 관계를 가졌던 것입니다. 그 부인이 집을 떠나서 애기를 낳아서 이름을 제퍼슨이라고 지었는데 그 후손들이 번창한 것입니다. 별도리없이 흑인 후손과 백인 후손이 함께 기념예식을 갖게 되었다고 한 기록을 읽어보았습니다. 뼈가 쉽게 썩지 않듯 부부의 관계도 만났다가 헤어지고 헤어졌다가 만나고 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 오래오래 계속하는 반영구적인 관계입니다.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에는 사라지지 않는 관계, 헤어지지 않는 관계가 바로 부부의 관계로 하나님이 맺어준 것입니다.

 

 2. 부부의 관계

 하나님께서 여자를 만들때 남자의 옆구리뼈를 취해서 만들었다는 것은 동등한 위치에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갈비뼈는 심장에 가장 가까우니까 사랑으로써 하나로 동등한 인권을 가지고 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3장 28절에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나 가정을 이루고 사는데 있어서 질서는 다릅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이 다 동등한 인권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가 회장이나 사장일수는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데 있어서의 직분은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가정에도 남편과 아내가 동등한 인권을 가지고 있지만 남편과 아내라는 직분상의 위계는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머리와 몸의 관계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 22절로 24절에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인권의 문제가 아니라, 가정에서의 직위의 문제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합쳐서 가정을 만들어 가는데 둘다 지도자가 될수 없으니까 남편은 앞에서 끌어주고 아내는 뒤에서 밀어주고 남편은 리더가 되고 아내는 따라가는 사람이 되는 가정에서의 협동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못 이해해 ‘여자는 남자보다 우월하지 못하다. 남자가 여자를 다스려야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잘못입니다. 서로의 협동 관계속에서 남편은 머리가 되고 아내는 몸이 되는 것입니다.

 머리와 몸이 서로 싸우는 것 보았습니까? 머리없는 몸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몸없는 머리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머리와 몸은 똑같은 하나이지만 그 직분상 머리는 몸을 돌보고 양육하고 이끌어가고 몸은 머리를 받들고 따라가는 그런 직분이지 머리와 몸이 분리되어서 서로 관계 싸움을 하면 큰일나지 않습니까? 그와같이 남편은 가정에 있어서 머리가 되는 것입니다. 머리는 몸을 이끌고 가며 몸의 안전과 평안을 위한 전체적인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남편의 책임은 굉장합니다. 한 가정의 머리가 되어서 온 가정에 평안과 안정을 위해 책임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몸은 머리의 인도와 결정에 절대 복종합니다. 몸이 머리의 명령에 복종하지 아니한 사람은 중풍병에 걸렸거나 파킨슨병에 걸린 사람입니다. 중풍에 걸린 사람은 머리가 아무리 바로 걸으라고 해도 바로 걷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지 않습니까? 건강한 가정은 남편이 가정을 이끌어 나가고 아내는 남편을 받들고 따라가는 가정이 건전한 가정입니다. 병든 가정은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따로따로 놀고 서로 시기, 분노, 질투하고 싸우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격언에는 ‘남자를 늙게 하는 네 가지가 있다. 불안과 노여움, 자식, 악처인데 그 중에 제일 늙게 하는 것이 악처다’는 말이 있습니다. 탈무드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순종하는 아내를 얻은 남자’라고 적혀 있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고 몸인 아내는 머리인 남편의 인도와 결정에 절대 복종하면 그 부부는 행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부부 관계인 것입니다. 성경적인 부부관계란 사랑과 복종의 관계지 폭력의 관계가 아닌 것입니다. 사랑을 하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머리가 몸을 사랑해서 몸을 잘 돌보면 몸은 머리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잘 돌보아주면 아내는 남편을 따라가고 복종하고 잘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복종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예수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칩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짊어지고 몸을 찢고 피를 흘리기까지 사랑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그 절대적인 사랑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두말하지 않고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와같이 가정에도 남편이 아내를 절대적인 사랑으로 사랑하고 돌보면 아내는 남편을 순종하고 따라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프랑스 철학자 H.A.텐은 부부관계를 “결혼 후 첫 1주일 동안은 서로 관찰하고, 그 다음 3개월은 사랑한다. 그 다음 3년은 싸우고, 그 뒤 30년은 용서하면서 산다”고 정의했습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남편이 군주로 군림하고 아내를 노예로 부리는 그런 관계가 절대로 아닌 것입니다. 사랑과 복종, 사랑과 섬김의 관계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미워하는데 남편을 사랑할리가 없으며 남편을 따라갈리도 없는 것입니다. 사랑과 복종은 서로 함수관계가 되어 있어서 사랑을 많이 하면 많이 복종하고 미워하면 반역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지난해 한국여성상담센터가 서울시내 기혼남녀 81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가정폭력에 대한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남성 세 명중 한 명은 부부갈등 시에 아내에게 폭력을 사용했다고 말했습니다. 폭력을 사용한 남성 중 80%는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아내를 세차게 밀치고 손바닥으로 뺨을 때리는 폭력을 사용했으며, 20%는 심각한 폭력 수준으로 발로 차거나 주먹을 때리거나 물건으로 때리고 심지어는 칼이나 흉기로 위협하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05년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는 이혼 상담을 하는 이유 중 폭력으로 인한 것이 전체의 3분의 1을 넘는다고 발표했습니다. 부부관계란 동등한 인권 관계입니다. 하나님께서 여자를 지으실 때 남자의 갈빗뼈를 취하신 것은 부부가 수평적 관계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부부관계는 결코 폭력으로 이끌어 가서는 안됩니다. 오직 남편과 아내가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면서 한수레라는 가정을 만들어 가는 관계지 폭력관계는 결코 아닌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3. 원만한 부부관계를 위한 길

 우리가 원만한 부부관계를 위해서 늘 생각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서로 이해하고 이해시키기 위해서 노력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라난 환경이 다르고 생각이 다릅니다. 그러므로 원만한 부부관계를 위해서는 서로 이해하기 위해서 대화를 많이해야 됩니다. 상대를 설득하려고 하지 말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십시오. 이야기를 하다하다 나중에는 할말이 없을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합니다. 대화가 부족하면 갈등이 생겨나게 됩니다. 로마서 12장 16절에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본 어느 부부의 일이 생각납니다. 한 마을에서 재미있는 게임을 하기로 했습니다. 이 부부는서로 발을 끈으로 묶고 뛰는 이인삼각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한달 동안 24시간 내내 발을 서로 묶고 지냈습니다. 밤낮으로 서로의 발을 묶고 훈련한 결과 그 부부는 실제 경기에서도 1등을 할수 있었습니다. 이해와 동정도 마찬가지 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해서 마음이 하나로 묶여 가면 나중에 어떤일이라도 다툼 없이 쉽게 일을 해나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의 심정에 동정을 하고 관심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가장 상처를 주는 것은 ‘무관심’입니다.

 사람은 감동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즐거울 때 함께 즐거워하고 슬퍼할 때 함께 슬퍼하고 어려움을 당할 때 함께 고뇌하고 좋을 때는 함께 기뻐해주는 이러한 일이 있어야 인생이 서로 감동을 하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은 이웃을 방문할때 선물을 가져갑니까? 심방을 가더라도 그냥 빈손으로 가는 것보단 작은 것일지라도 선물을 들고가면 감동을 합니다. 서양 사람들은 집을 방문할때 반드시 꽃을 사갑니다. 꽃을 사가면 그 집안 식구가 그 꽃을 받아서 향기를 맡고 고맙다고 하면서 꽃이 예쁘다고 굉장히 칭찬합니다. 그 꽃 때문에 방문하는 사람과 방문을 받은 사람들 모두가 마음에 감동이 되고 서로를 동정하게 되며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무관심은 상처를 가져옵니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칭찬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조그만 일을 해도 그것에 대해서 칭찬을 하고 기뻐하고 손바닥을 쳐주고 하면 감동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평범한 삶속에 조그마한 일에 감사하고 칭찬하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이것이 우리의 삶에 활력소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3장 8절에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서로 마음에 감격을 하고 함께 마음을 나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부간에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무조건 참는 것이 좋습니다. 부부간에는 싸워서 이기면 손해봅니다. 이 세상에 이겨서 손해보는 것은 부부싸움입니다. 남편하고 아내하고 싸우면 그날부터 남편은 찬밥 먹을 각오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내도 남편이 집에 안돌아오고 바깥으로 돌기 시작하면 굉장히 그 결과가 안좋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부싸움은 이겨도 손해나고 져도 본전이므로 부부간에 무조건하고 참는 것이 좋습니다. 잠언 12장 16절에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부부간에는 허물을 들춰내지 마십시오. 온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모른체하고 넘어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가정을 원만하게 이끌어가는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상대를 자기 소유물로 생각하는 잘못된 생각을 가져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아내도 남편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그리고 또 남편도 아내의 소유물이 아닌 것입니다.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이었던 카터 대통령의 아내 로자린은 남편하고 종종 싸웠습니다. 카터 대통령하고 부인이 싸운 이유는 ‘시간 관리’ 때문이었습니다. 남편 카터는 어느 모임에나 늦을까봐 조바심을 내는 편인데, 아내 로잘린은 여유있게 준비를 하는 편이었으니 둘은 외출전 늘 다툼을 별였습니다. 그러던 어느해 아내 로잘린의 생일카드에 카터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아무리 고치려해도 안되니 있는 그 모습그대로 수용하려고 합니다. 여보, 오늘까지 당신을 많이 괴롭혔는데 지금부터 당신은 시간지키는 일에 있어서 자유롭게 사십시오” 이 카드를 받고 아내는 뛸듯이 기뻐하면서 “당신이 나에게 준 최고의 생일 선물이에요”라고 칭찬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늦게 늦게 해도 남편이 아무말도 안하고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그 부부는 싸움을 안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므로 화평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상대방의 성격이 있고 생활습관이 있고 생각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일일이 간섭해서 나처럼 되라고 하면 안됩니다. 부부가 서로에게 너무 과도한 간섭하면 안됩니다. 서로의 생활에 프라이버시가 있기 때문에 서로의 생활에 자유를 주고 너무 간섭을 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과도한 사생활을 침해하면 부부싸움이 끝이 없습니다.

 미국 워싱턴 주립대학의 존 카터 석좌교수는 부부문제 치료에 있어 세계적인 권위자입니다. 그가 35년 동안 3000쌍을 분석한 결과 이혼에 이르는 지름길 네가지는 서로 비난하고 서로 변명하고 경멸하고 담쌓기였습니다. 이에대한 부부문제의 처방은 다음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부부싸움은 부드럽게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아내가 부드러운 말로 꺼내면 남편의 감정이 이완되고 사고 판단을 하는 두뇌 전두엽이 활성화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싸움을 할때 고함치고 앙탈부리지 말고 부드럽게 말하라는 것입니다. 톤을 낮추면 이해력을 가지고서 상상 할 수 있기 때문에 서로 이야기 하면서 상대를 이해할 수 있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고함치고 싸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의 행복을 위하여 협조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함께 사는 것이기 때문에 내 행복만 위하고 상대의 행복에 대해서는 무관심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어찌하든지 상대가 인생을 행복하게 살고 기쁘게 살고 성공하는 인생을 살게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는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남편도 아내가 성공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남편이 할수있는 일은 다 희생을 하고 도와주고 아내도 남편을 도와줘야 되는 것입니다. 존 허스톤 목사님이 우리와 같이 30년을 선교사로 한국에서 일하시면서 해외선교여행을 같이 다니게 되었는데 언제나 놀라운 것은 꼭 가방안에 부인의 쪽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당신… 이렇게 하세요’는 쪽지가 들어 있는 것을 보고 제가 늘 웃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와같은 배려가 서로를 행복하게 도와주는데 굉장한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미국 트루먼 대통령 당시 요직을 맡고 있던 뉴볼드 모리스가 공권력을 남용한 혐의로 심문을 받게 되었는데 의회에 출석한 그는 자신이 중상모략을 당하고 있는 것에 매우 화가 나서 점점 언성을 높이다가 손수건을 꺼내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습니다. 그런데 손수건은 안나오고 종이 쪽지 하나가 딸려 나왔습니다. 그는 그 쪽지를 읽다가 국회의원들 앞에서 껄껄 웃었습니다. “왜 웃느냐”는 다른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뉴볼드 모리스는 “저는 화가나면 언성을 높이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옷을 벗어 던지는 습관이 있어요. 이것을 아는 아내가 오늘 국회에 나오는 나에게 포켓에 쪽지를 써놓았습니다. ‘여보, 아무데나 함부로 옷을 벗어 던지고 고함을 치지 마세요’ 라고 말입니다. 이것을 보고 내가 웃었습니다” 그러니까 온 국회의원들이 다 웃었습니다. 좋은 아내 덕분에 청문회에서 용서를 받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입니다. 서로 도와 주는 것은 작은 결점을 보완해주고 도와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도록 합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개성과 성장과정과 교육과 인생경험이 다른 남녀가 부부가 되어 사는 것이니 결코 쉬운일이 아닌 것입니다. 어느분이 쓴 책에 보니까 여자와 남자는 각기 다른 행성에서 지구로 찾아와 함께 산다고 말합니다. 그처럼 성장과정도 다르고 사고도 다르고 개성도 다르고 취미도 다른 두 사람이 함께 모여 사니 수많은 시련과 어려움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를 극복하고 살아가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하고 언제나 상대를 이해하려고 끝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통해서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고 그 다음에 상대를 동정하고 언제나 감격하고 칭찬하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그 다음 어떠한 일이 있든지 사랑하기로 결심을 하고 좋은 점만 사랑하지 말고 못된 점, 결점까지도 사랑하려고 결심을 하고 참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참는 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부부생활이 로맨틱하지만은 않습니다. 부부의 생활은 긴 삶을 서로 이해하고 동정하고 사랑하고 참으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오래 참음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가정의 달에 가장 중요한 것이 부부의 행복과 사랑입니다. 부부가 깨어지고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가 불안하게 되고 사회가 흔들리면 국가가 불안하게 됩니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해와 동정과 사랑과 인내를 가지고 훌륭한 가정을 이루며 살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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