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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2007.03.1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창세기 37장 18∼20절


긍정적인 꿈은 긍정적인 미래 만들어
세상은 꿈꾸는 자가 변화시킨다
생활속 기적, 운명 정복, 환경 극복


 꿈꾼다는 것은 지금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마음속에 삶의 목표를 분명히 가지고 그것이 이뤄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외적인 환경이 아니라 그 사람의 가슴속에 있는 꿈입니다. 꿈을 잉태한 사람은 일정한 기한이 지나면 반드시 그 꿈을 해산할 날이 다가옵니다.

 

 1. 꿈꾸는 자 요셉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열한번 째인 요셉은 꿈꾸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신앙이 좋고, 행실이 단정하며, 하나님을 사모하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음속에 꿈을 꾸는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은 두 번 꿈을 꾸었는데 창세기 37장 7절에 보면 한번은 형들과 함께 들에 나가서 곡식을 거두는데 자기 곡식단이 가운데 서고 형들의 곡식단이 자기를 둘러 싸더니 자기 단을 향해서 절을 합니다. 놀라운 꿈을 꾸고 깨어나서 그 꿈을 형들에게 이야기 하니까 형들이 그 말을 듣고 심기가 편치 못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꿈도 그렇습니다. 그가 하늘을 쳐다보니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쭉 일직선으로 서더니 자기를 향해서 절을 넙죽합니다. 그래서 그것도 깨어나서 아버지와 형들이 있는 앞에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니까 형들의 마음이 더욱 완악해졌습니다. 아버지도 형들이 너무 분노하기 때문에 요셉을 꾸짖었습니다. “네가 감히 어떻게 그런말을 하느냐? 해와 달은 아버지와 어머니로 열한 별은 형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냐, 과연 네 아버지와 어머니와 형들이 네 앞에 엎드려서 절할 수 있는 것이냐?” 고 꾸짖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그 말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그 꿈이 보통 꿈이 아닌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꿈을 잉태하면 그 꿈이 요셉을 이끌었습니다. 요셉의 운명과 환경이 꿈에 의해서 지배를 당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가 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꿈을 마음속에 품으면 꿈이 우리를 만들어 가고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하루는 아버지가 요셉을 불러서 형들이 양을 치고 있는데 음식을 가지고 가서 대접을 하고 “안부를 묻고 돌아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셉이 음식을 들고 형들을 만났을때 형들이 요셉을 보고 “저기 꿈꾸는 자가 온다. 저 녀석을 죽여 버리고 그 꿈이 어떻게 되는지 보자!”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말을 하는 자체가 벌써 꿈에 지배를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들은 자기가 말한다고 하지만 이미 요셉이 꾼 꿈이 그 형들의 언어 심사 행동을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요셉이 형들에게 잡혀서 버림을 당해야 꿈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형들은 달려 들어서 다짜고짜 요셉이 가져온 음식을 빼앗고 요셉의 옷을 벗기고 그를 마른 우물에 던져 넣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희희낙락 하면서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 자체 조차도 꿈이 이루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마침 아라비안 대상들이 향품을 싣고 오자 형들이 말하기를 “우리 요셉을 마른 우물에 던져서 죽게 내버려둘 필요가 있느냐. 저를 종으로 팔면 30냥의 돈을 받을 것이 아닌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마른 우물에서 이끌어 내어서 아라비안 대상에게 30냥의 돈을 받고 팔았습니다.

 요셉이 종으로 끌려 가면서 “날 살려주세요!”라고 애걸복걸해도 모른체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그 자체가 꿈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큰 불행이 다가온 것처럼 생각되지만 이미 요셉이 본 꿈이 요셉과 형의 삶속에서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은 애굽으로 끌려가서 노예시장에서 시위대장 보디발의 종으로 팔렸습니다. 그것도 꿈이 인도한 것입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10년 동안 종살이 하다가 모함을 받아 시위대 감방에 들어가서 3년간 옥살이를 했습니다. 그 자체조차도 이미 꿈이 이끌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요셉이 30살이 되었을때 바로가 꿈을 꾸고 해석을 못할 때 요셉이 가서 그 꿈을 해석하여 7년 풍년에 7년 흉년이 들것을 예언하고 흉년을 면할 방도를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바로가 감동해서 요셉을 국무총리로 만들었습니다. 그 당시 애굽천하가 요셉에게 절을 하고 가나안 땅에 살던 야곱과 그 아들들이 흉년이 들어 먹고 살길이 없으니 양식을 구하러 애굽에 내려와서 요셉 앞에 엎드려 절을 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꿈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일단 우리 마음속에 꿈을 품으면 그 꿈이 모든 운명과 환경을 지배하고 만들어 가고 이끌어 갑니다.우리의 미래는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긍정적인 꿈을 꾸면 긍정적인 미래가 만들어지지만 부정적인 꿈을 꾸면 부정적인 미래가 만들어 집니다. 하지만 아무 꿈도 꾸지 않으면 잡초가 만발한 미래를 가져오게 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실 때 그 가슴 속에 인류 구원의 꿈을 꾸고 오셨습니다. 그러나 인류는 아담이 하나님을 반역함으로 죄의 종이 되었습니다. 세속과 부정과 부패의 종이요, 질병과 고통의 저주의 종일 뿐더러, 가난과 죽음과 멸망의 종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2. 인류구원의 꿈을 안고 오신 예수님

 인간은 과학이나 문학, 예술, 정치, 경제, 교육 등이 모든 것을 동원했지만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꿈을 갖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서 인류를 절망에서 건지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꿈을 품고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꿈꾸는 자로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요셉이 꿈꾸는 자인 것처럼 예수님은 가슴속에 인류 구원의 꿈을 품고 이땅에 오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보면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주님은 가슴에 꿈을 품고 이 땅에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원수들은 예수님의 꿈을 짓밟으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3년 반의 사역동안 가는 곳마다 대제사장, 바리새인, 사두개인, 교법사들이 따라 다니면서 공격하고 모함하고 질투하고 짓밟았습니다. 예수님의 꿈을 없애려고 한 것입니다. 최후에는 그들이 로마 정부와 결탁하고 빌라도의 권력에 의지해서 그리스도를 잡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이 그들의 계획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은 생각하기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면 예수님의 꿈이 산산조각 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마음속에 인류 구원의 꿈을 가지고 오셨기 때문에 그 꿈의 인도를 받습니다.

 유대인 대제사장, 바리새인, 사두개인, 교법사, 로마 정부까지도 예수님의 꿈의 지배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해하려고 했지만 예수님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그 꿈은 그것을 다 선으로 바꿔 버리고 말았습니다. 원수들의 공격이 꿈의 지배아래 있더라도 예수님의 십자가는 오히려 예수님의 꿈을 이루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원수들은 십자가를 통하여 예수님의 꿈을 산산조각으로 박살 내겠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예수님의 꿈을 이루는 도구가 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은 꿈을 품은 사람들의 꿈을 통해서 다가오는 모든 악을 선으로 바꿔 버리십니다. 꿈을 이루는 도구로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원수들의 손에 잡혀서 처참하게 십자가에 못박혀 몸찢기고 피흘려 죽을때 사람들은 예수님의 구원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보면 십자가에서의 가장 처참한 고난과 어두움은 꿈이 이루어지고 있는 과정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꿈이 이루어지는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외치실 때 용서와 성결과 치료와 축복의 꿈이 이루어졌으며 영생부활과 천국의 꿈, 인류 대속의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꿈이 바로 원수들의 손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원수들은 예수님을 멸망시키고 예수님의 모든 소원을 짓밟고 꿈을 찢어 버린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인류는 바로 그 원수들의 손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몸찢기고 피 흘리신 대가를 통해서 죄를 용서받고 의와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예수님은 마귀와 세속을 다 청산해 버리고 거룩함과 성령 충만을 주셔서 우리의 병을 다 도말하시고 치료와 건강을 주셨습니다. 다시말해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저주를 당하시므로 모든 저주를 구속하시고 아브라함의 축복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사망과 음부를 멸하시고 인류에게 부활과 영생천국을 영원히 줄 수있는 그리스도의 꿈, 하나님 아버지의 꿈을 이루셨던 것입니다.

 꿈은 승리합니다. 꿈을 도와주는 사람도 하나님이 사용하시고 꿈을 미워하고 꿈을 파괴하려는 원수들도 하나님이 사용하십니다. 꿈은 모든 것을 초월합니다. 모든 인간의 행위는 3차원이지만 꿈은 4차원입니다. 차원이 높습니다. 낮은 차원 위에 높은 차원인 꿈이 있기 때문에 낮은 차원이 아무리 장난을 해도 높은 차원의 꿈의 지배를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꿈을 마음속에 품는다는 것은 새로운 창조를 가슴속에 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원수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처참하게 못 박았지만 이사야 53장 10절에 보면 그것이 어떻게 되었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야훼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야훼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고 말한 것입니다.

 

 3. 꿈을 품은 성도들

 예수를 믿는 성도들을 세상 사람들이 바라볼때 “야, 저기 꿈꾸는 사람이 온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가정에서 예수 안믿는 남편이나 혹은 아내나 자식들이 “우리 엄마는 꿈꾸는 사람이다. 우리 아버지는 꿈꾸는 사람이다. 우리 자식들은 꿈꾸는 사람이다”라고 말합니다. 또는 “야, 저기 꿈꾸는 사람이 밥 먹으러 온다. 야, 꿈꾸는 사람이 직장에 나간다. 꿈꾸는 사람이 시장에 간다. 우리 집에는 꿈꾸는 사람이 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꿈을 품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린 아기를 잉태한 주부가 있어야 가정에 아기가 태어나는 것입니다. 아기를 못 낳으면 가정이 소멸되고 맙니다. 이처럼 꿈이 없으면 아무런 미래가 창조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꿈을 품을 수가 있어야 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남녀노유, 빈부귀천 할 것 없이 꿈을 꿀수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 위에서 몸찢기고 피흘리셔서 그 십자가의 보혈을 통하여 우리에게 엄청난 은혜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 선물이 어떤 선물입니까? 죄인은 용서받고 의롭게 되어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는 꿈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에 집에 있을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나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리라”는 말씀이 있어 마음속에 천국의 꿈을 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믿는 사람은 모두다 십자가를 쳐다보고 꿈을 품고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꿈을 품으면 죄를 극복하고 세속과 마귀를 극복하고 질병과 고통을 극복하고 저주와 가난을 극복하고 죽음과 절망을 극복하고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사람으로 거듭날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바라본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오다가 길이 너무 험하므로 원망, 불평, 탄식을 하다가 불뱀에 물려 죽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불뱀에 물려 독이 올라 쓰러지는데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구리로 불뱀을 만들어서 장대에 높이 달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빨리 구리로 불뱀을 만들어서 장대에 높이 달았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그 불뱀을 쳐다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죽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개를 들어 장대를 쳐다보았습니다. 거기에 매달린 구리뱀을 보았을때 몸의 독이 사라지고 건강을 회복하고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어느 누구라도 이 광야같은 인생을 살면서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쳐다보면 변화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듣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마음속에 꿈을 얻기 위해 교회에 예배 드리러 옵니다. 절망에서 소망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가난에서 부로, 패배에서 승리의 꿈을 마음속에 품기 위해서 옵니다.

 요셉을 보고 형들이 “꿈꾸는 자가 온다”고 말한 것처럼 예수님이 꿈을 품고 이 땅에 오신 것처럼 우리들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꿈꾸는 자가 되었고 또 되어야만 하고 또 될 것입니다.꿈을 마음에 품고 있으면 꿈이 우리들을 이끌어 가고 우리의 운명과 환경을 만들어 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대륙을 발견하려는 꿈을 가진 콜럼버스는 스페인을 떠나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며 마음이 설레였습니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것은 사나운 바람과 억센 파도, 끊임없이 펼쳐진 바다와 하늘뿐이었습니다. 갖고 왔던 식량과 물은 점점 동이 나고 선원들은 피곤에 지쳐서 눈이 붉게 충혈되어 콜럼버스를 노려보며 당장이라도 데모를 하려고 하는 기세로 분노에 몸을 떨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한계에 도달한 것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럼버스는 태연하게 책을 읽으며 절망하는 선원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나침반이나 선박의 성능을 믿고 항해를 시작한 것이 아니다. 나를 움직이는 힘은 꿈과 소망이다. 나는 지금 이사야서를 읽으며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고 있다” 그래서 꿈이 현실을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만약 콜럼버스가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다수의 뜻을 따라 회항했더라면 미국 대륙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콜럼버스가 가지고 있는 것은 마음속의 꿈과 희망이었습니다. 그 꿈과 희망이 콜럼버스로 하여금 신대륙을 발견하도록 이끌어 준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열두 제자에게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열두 제자는 초등학교도 못나온 사람들입니다. 조그마한 유대땅의 변두리 이외에는 나가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갈릴리의 무식한 어부들이요, 혹은 세리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보고 온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증거하라니 도대체 될만한 말씀입니까? 이 제자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을 보았을 때 꿈은 무슨 꿈입니까? 그리스도를 버리고 도망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지 50일만에 마가요한의 다락방에서 제자들이 모여 기도할 때 성령이 임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자 그들의 마음속에 부어진 것이 바로 잊었던 꿈이었던 것입니다. 불학무식한 어부들이나 세리들이었지만 꿈이 그들을 붙잡아 일으켜서 용기와 힘과 능력을 주어 천하를 복음화 하기 시작했고 300년 이내에 로마 대제국을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도록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녀들의 교육을 잘 시키려면 예수믿고 성령받게 하는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예수믿고 성령받으면 머리가 되고 꼬리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에 내려가지 않으며 남에게 꾸어 줄지라도 꾸지 않습니다. 세계 역사를 통해 보십시오. 예수를 믿고 성령이 임하신 개인과 나라마다 문명국가가 되어 잘 살게 되고 지도적인 국가가 되어 지배적인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마음속에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꿈을 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불가능은 없다’라는 책에서 “이 세상의 위대한 일은 모두 위대한 꿈을 갖는 데서 시작된다”고 말했습니다. 빌 하이빌스 목사님도 “꿈은 내 마음에 열정을 일으키는 미래의 그림”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인생은 환경이나 조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꿈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꿈은 얼마든지 환경과 운명을 극복하고 능히 승리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요사이 피자집이 참 많습니다. 그 중에도 ‘도미노 피자’를 창설한 탐 마내건은 시골에서 자라난 고아였습니다. 10대 소년일 때 그는 프로 야구팀인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구단주가 되겠다는 큰 꿈을 가졌습니다. 고아이면서 학교교육이 전무한 그가 어떻게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구단주가 될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고학을 하고 열심히 애를 써서 대학에 들어갔으나 도저히 등록금을 낼수 없어서 중도 퇴학을 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그가 시작한 것이 조그마한 피자가게 였습니다. 그 피자가게가 오늘날 연간 매출 20억 달러가 넘는 ‘도미노 피자’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소년시절부터의 꿈이었던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를 인수하여 구단주가 되었습니다. 탐 마내건은 LA 타임즈지와의 인터뷰에서 꿈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자가 되는 최고의 준비는 꿈꾸는 것에 있습니다. 기회가 찾아왔을 때 저는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제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엉뚱해 보이는 일들을 결국 해냈습니다. 그것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이런 일에 대하여 마음속에 꿈을 꾸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꿈을 품고 꿈을 꾸는 자는 그 꿈을 향해서 기적적으로 인도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인생은 꿈꾸는 자에 의해서 승패가 갈려지는 것입니다.

 세상은 꿈꾸는 자가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꿈을 주시는 영이십니다. 성령이 왜 우리곁에 계십니까? 우리에게 꿈을 주시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젊은이에게만 꿈을 주는 것이 아니라 늙은이에게도 꿈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젊은이에게는 환상을, 늙은이에게는 꿈을 주시고 우리에게 “보라, 꿈꾸는 자가 온다”라고 하십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나아가 복음을 심어 온천하를 극복할 수 있는 꿈을 마음속에 넣어줘야 합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것은 꿈입니다.

 오늘 우리의 환경과 처지가 어렵더라도 고통스럽고 괴롭더라도 꿈꿀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모든 환난과 시련을 다 정복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에서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라고 말하십니다. 우리들의 개인문제, 가정문제, 생활문제, 사업문제가 절망적이고 흑암이 다가오고 고통스럽더라도 눈을 들어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은 심한 고통속에서도 모든 사람들의 절망을 정복하도록 꿈을 심어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손을 내밀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이 진리를 깨닫고 더 찬란한 꿈을 마음속에 품고, 믿고 입으로 시인하고 나가면 우리의 생활속에 기적은 일어나고 운명은 정복되고 환경은 극복되고 우리는 승리자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열두 명의 어부와 세리들이 모여서 천하를 변화시킨 꿈을 마음속에 품었을때 그대로 된 것처럼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발버둥치는 우리가 아니고 승리하는 대한민국이 되는 꿈을 품으면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므로 그 꿈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꿈과 환상을 품고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그 꿈을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낭패와 실망을 당하여 곤고에 처해도 십자가를 바라보며 내일에 대한 아름다운 꿈을 가슴속에 품을 수 있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그 꿈을 갖고 운명과 환경을 지배하고 창조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야훼 하나님, 결코 땅과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만 바라보게 도와 주시옵소서.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하신 주님을 바라보고 강하고 담대하게 꿈을 꾸고 희망을 품고 말하되 감사하고 찬미하며 나가는 성도들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 최후의 꿈의 종착지가 천국인 것을 알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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