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시편 50편 23절
원망과 불평은 주의 노하심을 발하지만
오직 하나님을 섬기며 찬양·감사하면
영화롭게 된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져
하나님에게는 감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감사로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돕는 손길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미국을 세운 청교도들이 감사의 제단을 쌓고 미국을 세웠기 때문에 하나님은 영화로움을 느끼고 하나님의 손길을 베풀어 주었으므로 역사상 최대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감사가 국가의 기초가 되면 하나님이 능력의 손길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1. 불평은 마귀의 최고 무기이다
불평은 마귀의 최고 무기입니다. 지옥의 본질은 바로 불평입니다. 지옥의 본질이 불평이기 때문에 마귀는 항상 우리에게 와서 불평하게 합니다. 마귀는 없는 것을 지적해서 늘 불평하도록 만듭니다. 우리 인류의 두 조상을 바라보면 모두 마귀의 시험을 받았는데 그 시험이 바로 불평과 원망을 가지고 시험한 것입니다. 아담이 왜 시험을 받았나요? 아름다운 에덴동산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하는 걱정과 근심이 전혀 없었지만 마귀가 하와에게 와서 ‘하나님이 왜 너희들에게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느냐. 너희들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는데 하나님이 샘을 내어서 하나님처럼 되지 못하게 하려고 그렇지 않느냐’는 불평을 넣어 주었습니다. 불평과 원망이 들어오면 반역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하와는 곧 반역하여 선악과를 따먹고 남편에게도 주어 먹게 하였습니다.
인류의 두 번째 조상인 예수님도 똑같은 시험을 받았습니다. 사십주 사십야를 금식하시는 중에 마귀의 시험이 있었습니다. 마귀는 ‘하나님 말씀을 들을 필요없이 돌을 변하여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고 불평을 심어 주었지만 예수님은 넘어가지 않으셨습니다. 마태복음 4장 4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라고 단호하게 마귀의 유혹을 뿌리쳤습니다. 그러자 마귀가 예수께 또 찾아와서 ‘높은 첨탑에서 뛰어 내려오면 사람들마다 박수갈채를 치고 너를 따라올 것이므로 명성을 얻으라’고 시험하였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마태복음 4장 7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마귀는 예수님을 큰 산위에 데려가서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이면서 ‘내게 절하면 내가 이 모든 것을 주겠다’며 자기에게 절을 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4장 10절에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시므로 마귀가 심으려고 했던 불평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마귀는 먼저 우리에게 원망과 불평을 심어서 마음에 틈이 생기면 들어와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마귀의 전형물인 것입니다.
멕시코에 가면 온천과 냉천이 함께 솟아나는 신기한 마을이 있습니다. 한쪽에는 부글부글 뜨거운 온천이 올라오고 그 옆에는 아주 얼음같은 냉천이 올라옵니다. 그래서 아낙네들이 빨래하러 오면 뜨거운 물에 빨래를 적셔 빨래를 하고 찬물에 헹구어서 갑니다. 관광객들이 구경하러 왔을 때 안내원에게 물었습니다.“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굉장히 축복을 받았네요. 한쪽에는 온천이 있고 한쪽에는 냉천이 있으니 뜨거운 물에 빨래해서 찬곳에 헹구어 가니 하나님께 감사하지요” 그러자 안내원이 “아니오. 감사하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관광객들이 다시 “왜 감사하지 않습니까?”라고 묻자 이 사람들의 말이 “하나님이 온천을 주고 냉천을 주었으면 그 가운데 비눗물이 나오는 비누층을 주어야지 안주고서 이렇게 만들어 놓았냐”고 오는 사람마다 불평합니다. 있는 것에 감사하지 않고 없는 것만을 생각하여 하나님께 원망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항상 없는 것을 지적해서 불평을 말하게 합니다. 불평은 마귀의 최고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430년 동안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해방과 자유를 주어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냈습니다. 그들은 자유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원망, 불평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불순종해서 나중에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 멸망당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가에 이르렀을 때 애굽군대가 오는 것을 보고 ‘장지가 없어서 이곳에 장례 지내려고 데리고 왔느냐?’라고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홍해를 갈라서 육지같이 건널 수 있도록 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해 주셨습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르광야에서 사흘길을 걷는 중에 물이 없으므로 ‘목말라 죽이려고 데리고 나왔냐’고 원망했습니다. 이때도 하나님은 쓴물을 달게하여 마시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을것이 없다’고 불평했을 때 하나님은 만나를 보내어 배불리 먹게 하였고, 르비딤에서 또 물이 없다고 불평할 때 하나님은 물이 나오게 해주셨습니다. 또한 디베라에서는 악한 말로 불평하고 ‘고기가 없어 영양실조가 되어 못살겠다’고 불평하였을 때 주님이 메추라기를 보내어서 고기를 배불리 먹게 해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바네아에 왔을때 열두정탐꾼을 보내어 사십주 사십야를 정탐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정탐꾼중 10명이 그 땅을 악평해서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불평하고 반역하게 만들었습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이 예비하셔서 도와 주셨는데도 하나님의 돌보심에 감사하지 아니하고 없는것만 원망하며 불평하고 탄식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로 출애굽한 1세대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게 되었습니다.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민수기 14장 27절로 30절에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야훼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을 시험하는 마귀도 똑같이 그렇게 합니다. 항상 불평을 유도합니다. 불평하므로 하나님의 노하심을 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시골에서 너구리나 여우를 잡으려면 너구리나 여우굴에 소나무 생가지를 꺾어다가 불을 붙이면 연기가 납니다. 이때 연기를 굴속에 집어 넣으면 너구리나 여우가 굴에서 뛰어 나올 때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우리도 연기가 나면 눈이 따갑고 숨이 막혀서 살수 없습니다.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에게 연기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눈에 눈물이 나게 하고 숨 못쉬게 만드는 연기가 원망과 불평입니다. 하나님은 원망과 불평을 참고 견딜수가 없으므로 진노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어찌하든지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멸망을 당하게 하려고 우리에게 원망과 불평을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2. 감사와 찬양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원망과 불평은 마귀를 기쁘게 만들고 마귀의 무장이 되지만 감사와 찬양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부부가 서로를 칭찬하면 영화로움 때문에 마음속으로 춤을 출만큼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자녀에게 칭찬을 하면 영화로움을 느끼므로 용기와 힘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어머니는 훌륭한 자녀들을 길러냅니다. 처음부터 훌륭했던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칭찬으로 훌륭하게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학교에서 학습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저능아였습니다. 학교에서 교육이 불가능하다고 에디슨을 쫓아냈지만 그의 어머니는 에디슨에게 “너는 천재다. 보통 애들이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는 천재다. 내 아들은 천재니까 보통 애들하고는 공부할 수 없으니 내가 가르치겠다”라고 에디슨을 칭찬하였습니다. 그 결과 에디슨은 위대한 발명왕이 된 것입니다.
천국은 감사와 찬양의 처소로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끝없는 감사와 찬송이 충만한 영화로운 곳입니다. 감사와 찬양이 있는곳에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게 됩니다. 감사와 찬양이 있는 곳에 기쁨과 행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시편 150편 1절로 6절에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소고 치며 춤 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야훼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늘나라는 찬양의 곳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찬양을 하면 하늘나라가 우리에게 임하는 역사가 있게 됩니다.
시편 22편 3절에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감사와 찬양중에 거하십니다. 마귀는 예수 이름으로 쫓아내면 물러가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보혈과 말씀에 의해서 이길 수 있지만 처음부터 마귀가 우리에게 오지도 못하게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찬양할 때 이루어집니다. 사울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악령으로 고통스러워 하다가도 다윗을 불러다가 수금을 타고 노래를 부르게 하면 그에게서 악령이 떠나가고 평안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상 16장 23절에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잡혀서 많이 얻어맞고 깊은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쇠고랑에 차여 심한 매질과 굶주림으로 밤중에 괴로운데도 그들은 기도를 하고 찬양을 불렀습니다. 그 찬양이 얼마나 은혜로웠던지 주위에 있던 죄수들이 다 밤중에 잠에서 깨어나서 귀를 기울여 들을 정도였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찬양하므로 하나님이 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임하시면 평강이 넘치고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죄수들이 다 듣는 가운데 하나님도 바울과 실라의 찬송에 감동해서 빌립보 옥토를 뒤흔들어 버리니 지진이 일어나고 모든 죄수들이 차꼬가 다 풀려 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찬송과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주의 천사들이 와서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의 쇠고랑을 끊어버리고 원망, 불평, 탄식, 미움, 저주를 다 끊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해방을 시키는 것은 찬양이고 우리를 속박시키고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은 원망과 불평과 탄식입니다. 원망과 불평과 탄식을 하면 개인도 속박되고 가정도 속박되고 국가도 속박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를 마음의 고통에서 해방시키고 우리에게 평안과 자유를 주는 것은 오직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이 드려질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시편 100편 4절에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감사하면 천국문으로 들어가고 찬양하면 하나님의 궁전에 들어가서 하나님이 계신 곳에 함께 거하게 되므로 생명이 넘치는 은총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할 때 마음에 놀라운 평화가 오는 것을 체험합니다. 형언할 수 없는 기쁨, 평안, 만족, 즐거움이 임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감사와 찬양을 통해서 우리가운데 임하신 것입니다. 천국은 여기있고, 저기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평안과 기쁨과 행복과 영광이 충만할 때 천국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돈 고셋 목사님은 전 세계를 다니며 찬양 사역을 하는 분으로 ‘찬양의 폭발적 능력’이라는 책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돈 고셋 목사님이 이처럼 찬양 사역에 헌신하게 된 데에는 부인의 영향이 컸습니다. 부인인 조이 사모님은 목회자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음악을 했습니다. 교회에서 반주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지만 항상 사탄의 시달림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조이 사모님은 마음속에 우울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마음속에 ‘너는 죽는다. 21살이 지나기전에 죽을 것이다. 너는 쓸데없는 인간이다. 너는 살 필요가 없다’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파도처럼 마음에 들어 견딜 수 없었습니다. 자기 생각으로 자기를 조절할 수 없었습니다. 정신병원에 입원도 하고 또한 안정제를 먹어야 하루하루 생활을 하는 고통과 두려움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조이 사모님이 하나님께 자기의 슬픔을 다 내어 놓고 하나님께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는 왜 이렇습니까? 왜 내 생각이 아닌 다른 생각이 내 마음을 짓눌러서 우울하고 좌절하고 절망하고 자꾸 죽을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까?’ 그러자 성령께서 그에게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한 번만이라도 찬양에 너의 삶을 다 쏟아보라” 그녀는 어려서부터 교회 반주를 하며 찬양했지만 그때까지의 찬양은 그저 형식적인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습관적인 찬양이 아닌 삶을 통해 전심으로 드리는 찬양을 원했던 것입니다. 조이 사모님은 그 음성에 순종해서 하나님께 온 맘과 정성을 다해 찬양과 경배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천국이 그 마음속에 임하여 하나님의 기쁨과 평안과 영광이 충만해지고 마음에 우울증과 고통과 괴로움이 씻은듯이 사라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위해 칭찬받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찬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찬양하는 것입니다. 70세의 아들이 90세의 어머니 생일에 때때옷을 입고 어머니 앞에서 춤을 추었습니다. 이 어머니가 “내아들 잘한다. 옳거니. 옳거니. 잘한다”라고 말하는 것을 사람들이 보고 “다 노망했다. 90세의 할머니 앞에 70이 다된 아들이 때때옷을 입고 저렇게 춤을 추니 노망했지 않느냐”라고 비웃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70세의 아들은 그 어머니에게 참으로 효도한 것입니다. 70세의 아들이 90세의 어머니에게는 아직도 아이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냐. 내 아들 잘한다. 얼씨구나 좋다. 얼씨구나 좋다”하며 즐거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부르는 찬양은 다른 사람들이 들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즐겁게 하고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부르는 것입니다. 엄위하신 하나님 앞에서 어린 아이같은 기쁨으로 손바닥을 치며 즐겁게 찬송을 부르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되고 그곳에 하늘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3. 무엇을 감사할까?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되어 하나님을 모시고 그의 자녀된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는 사람이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저 캄캄한 밤중에 방황하며 살다가 멸망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를 통하여 죄사함을 받고 의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이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살다가 육신의 장막집을 벗어 버리고 예비된 영원한 집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26절에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라고 말씀하고 있고 시편 100편 2절로 3절에 “기쁨으로 야훼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야훼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신 것으로 우리는 감사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받은 복을 헤아리며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나온 과거를 돌이켜 볼 때 받은 복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를 낳아 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넓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받은 복을 헤아려서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받은 복을 헤아리며 감사하면 하나님은 더 많은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 29절에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늘진 곳을 찾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나무밑에도 그늘이 있고 다리밑에도 그늘이 있고 지붕밑에도 그늘이 있고 사람옆에 있는 그림자를 통해서도 그늘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햇빛을 찾으려면 광장에서도 길거리에도 집밖에도 산비탈에도 햇빛은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생각의 방향이 우리가 찾고자 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먹고, 입고, 마실 것이 있는것을 감사하고 찬양하면 우리가 가진 것 위에 하나님이 더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7절로 8절에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있을 곳만 있으면 우리가 족한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한 농부가 타작을 하면서 “금년 채소 농사는 완전히 망했다”고 불평하였습니다. 그때 친구가 있다가 “자네 감자 농사도 망했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니야. 잘됐지”라고 농부는 말했습니다. 그러자 친구가 “벼농사는?”이라고 물었습니다. 농부는 “풍년이지”라고 말했습니다. 친구는 다시 “옥수수 농사는?”이라고 물었습니다. 농부는 “잘 되었지”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그러면 왜 자네는 잘된 감자농사, 벼농사, 옥수수 농사는 감사하지 아니하고 꼭 안된 채소농사만 가지고 원망하고 불평하는가?”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자 농부는 생각을 바꾸고 감사하자 표정이 밝게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생각을 바꾸면 무엇이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없는 것을 생각하지 말고 있는 것을 가지고 먼저 감사하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감사해야 될 것은 장차 올 천국을 인하여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로 3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 없는 영원한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이 넘치는 천국을 예비해 놓은 것입니다. 잠시있다 사라지는 집이 아니라 영원히 들어가 거할 곳을 주님이 예비해 놓았으니 이것을 생각할 때 기뻐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제가 젊었을 때 목사님께서 천당에 대해 이야기하면 ‘아직 새까맣다. 나에게는. 먼훗날에 일어날 일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70세가 넘으니 굉장히 가깝게 느껴집니다. 저 건너편에 있는집이 이제는 내 눈에 희미한 것이 아니라 확실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더 천국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늘나라에 집이 있으면 우리는 안심할 수 있습니다. 저는 가끔가다 몸이 아플때도 있고, 또 몸이 피곤할 때가 있습니다. 젊었을 때는 자고나면 건강하고 자고나면 깨끗했는데 지금은 피곤이 쌓이면 자고나도 잘 일어날 수 없고 몸이 쉽게 회복되지 못하는 것을 느낍니다. 그럴때 늘 천당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죽음을 생각하는데 천국에 집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내가 이 육신의 장막집을 떠날 때 주님이 와서 내손을 잡고 영원히 살 천국으로 데려간다는 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고 소망이 넘치는지 모릅니다. 만일 천국이 없다면 죽음이 가까울 때 가야할 곳이 없으므로 얼마나 당황하고 좌절하고 절망하겠습니까? 오늘 예수를 믿지 않고 구원받지 않은 사람은 갈곳이 없으므로 내일이 캄캄합니다. 육신의 집을 떠나가면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지는 길밖에 다른 길이 없는 것입니다. 집없는 방랑자가 갈곳은 지옥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영원한 집을 예비해 놓으셨으니 이로 인하여 감사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하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축복을 주십니다. 그리고 마음을 긍정적으로 만들고 밝고, 맑고, 환하며 희망적이게 하며 모든 주위를 기쁘게 합니다. 감사하는 남편은 아내와 자식들에게 기쁨이 되고, 감사하는 아내는 남편과 자녀들에게 행복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마음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합니다. 감사하는 가정과 사회는 건강하고 발전하는 가정과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감사와 찬양은 하나님의 축복의 길이요, 원망과 불평과 탄식은 마귀의 패망의 길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항상 입술로 감사의 제사를 드리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구원을 베푸신 주님으로 인해 감사하면 하나님께 들어가는 문이 되고, 우리의 찬양은 하나님의 궁전에 들어가는 축복이 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모두 하나님의 궁전에 들어가서 살게하시고 이 땅에 사는 동안 마음에 천국을 이루며 살게 도와 주시옵소서. 항상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를 의지하여 감사하는 삶을 살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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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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