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 4장 4∼7절
주안에서 마음의 평안을 이루고
받은 복을 헤아림으로 감사할 때
이웃사랑을 통한 기쁨과 행복이 넘쳐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내적, 외적인 많은 조건들이 필요합니다. 여러 조건들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마음이 불행하면 환경적인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1. 평화가 넘치는 마음
행복의 첫째 조건은 마음의 평안입니다. 마음의 평안을 깨뜨리는 요소들 가운데 죄책감으로 인한 양심의 고통을 가지고 있으면 평안을 누릴 수 없습니다. 마음의 평안이 없으면 부귀영화와 공명이 있다 하여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39절에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 죄들 때문에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책감으로 인한 마음의 고통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지 않고는 해결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세상법을 어기고 법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불안과 초조함을 느끼게 됩니다. 고소를 당하거나 소송사건에 휘말리면 상당한 고통과 괴로움속에 있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세상의 부와 명예가 주어진다 할지라도 행복해 질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심적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위로받을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구하고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은 모든 것에 합동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의 손에 맡기면 유익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법적인 조치를 당하여 불안해 하는 사람도 하나님께 의지하고 모든 일을 맡기면 결국에는 합동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대인관계속에서의 심한 갈등은 마음의 평화를 깨뜨립니다.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가 서로 마음이 안맞아 갈등을 빚으면 결코 가정이 평안하지 않습니다. 사회적인 갈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역, 계층간의 갈등으로 서로 대립하는 사회는 불안할 뿐 평안이 없습니다. 이런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갈등이 있을 때 먼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평안으로 상대를 대하면 자기안에 있는 평안을 다른 이에게 전달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안에 있는 평안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생활의 고통이 마음의 평안을 깨뜨립니다. 직장을 잃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고심하고 있다면 마음에 평안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업이 무너져가고 부도가 날 지경에 이르렀다면 마음의 평안을 누리는 것은 요원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양심의 가책, 법적인 문제에 직면함으로 다가오는 고통, 대인관계의 갈등, 생활의 고통이 있을 동안에는 평안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기 위해서는 외적인 힘을 의지해야만 가능합니다.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며 죽어가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도움을 통해서 물밖에 나올 수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만이 마음의 불안과 고통 가운데 처한 우리를 건져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건져주신다는 믿음을 통해서 마음에 평안을 얻고 기도하므로 하나님께 짐을 맡길 수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에게 오라고 말씀하시고 평안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시편 91편 1절로 7절에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야훼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예수안에 있는 사람은 전능자의 그늘 아래 있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피난처와 우리의 거할 처소로 삼으면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우리를 지켜 모든 길에서 보호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아버지의 품에 안기면 우리의 마음속에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시편 23편 4절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크고 작은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게 됩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와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피를 의지하는 자는 결단코 떠나지 아니하고 버리지 않겠다는 언약을 주신 것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다닐지라도 주님이 함께 계셔서 목자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통해서 길을 열어 주시고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주님이 계시므로 마음에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평안은 행복의 기초일 뿐 아니라 문제해결의 초석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2. 항상 감사하는 마음
사람은 감사하는 마음을 통해서 행복해집니다. 마음의 행복을 깨뜨리는 원망, 불평, 짜증, 탄식 등을 가지고 있으면 행복감을 느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있는 것 보다 없는 것을 바라보고 늘 불평합니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있는 것을 계산하지 않고 없는 것만을 계산합니다. 성경에는 있는 자에게는 더주고 없는 자에게는 있는 것까지 빼앗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어진 것을 생각하고 먼저 감사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화상으로 눈썹을 잃어버린 분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눈썹이 있을 때는 고마운줄 몰랐는데 눈썹이 없고 보니 비가 오면 물이 눈으로 다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눈썹이 있을 때는 물이 그곳을 통해서 흘러 나가 버렸기 때문에 눈을 뜰 수 있는데 눈썹이 없으니까 물이 눈으로 들어오므로 눈을 뜰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썹이 있는 것을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냄새맡을 수 있는 코와 맛볼수 있는 혀와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수족이 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것만으로도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이유는 충분한 것입니다. 시편 42편 5절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모든 것을 헤아려 보고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자기 삶을 비교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허락된 삶을 받아 들이고 이에 충실할 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7절로 8절에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상담가 아비(Abby) 박사에게 15세의 한 소녀가 편지를 썼습니다. “나는 불행합니다. 나는 독방도 없고 부모의 간섭은 심하며 또 나를 믿어주지도 않습니다. 나를 청해주는 남자 친구도 없고 좋은 옷도 없습니다. 나의 장래는 암담합니다”라고 편지를 썼습니다. 그런데 이 편지를 신문에서 읽은 13세 소녀가 이런 글로 답글을 썼습니다. “나는 걷지 못하는 불구의 소녀입니다. 하지만 말하고 걸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나는 비록 걷지는 못하지만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행복이 있습니다. 나는 내가 걸을 수 없다는 것을 불평하지 않고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와 말할 수 있는 입과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는 팔이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을 감사하고 없는 것으로 불평하지 마십시오”라는 답글을 신문에 내었던 것입니다. 행복은 감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이 받은 복을 헤아리는 사람만이 감사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불란서의 철학자이며 평론가인 알랭은 말하기를 “남보다 나은 것을 목표로 행복을 추구한다면 영원히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남보다 한두 가지 나은 점은 있어도 전부가 뛰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행복이란 남과 비교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족하는 데서 얻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게 있는 것으로 만족하고 그곳에서 최선을 다하며 감사할 때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시편 103편 2절에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택를 기억하고 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주님은 우리에게 더욱 더 감사할 것을 많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신 것에 불평하고 원망하면 하나님께서는 있는 것도 빼앗아 가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20절에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복되게 하려고 노력하면 우리는 더 행복해집니다. 자기 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남의 행복과 기쁨을 위해 살 때 자기 자신에게 더 큰 기쁨과 행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남에게 베풀 때 그것이 30배, 60배, 100배가 되어 자신에게 돌아오지만 자기가 받으려고 한다면 있는 것조차 잃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5절에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끊임없이 이웃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데일 카네기는 행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행복의 유일한 방법은 감사를 바라지 않으며 남에게 ‘주는 기쁨’을 갖는 데 있음을 기억하라. 당신의 고민거리를 헤아리지 말고 당신이 받은 축복을 헤아리라. 다른 사람에게 흥미를 가짐으로써 과도한 자기 집중에서 벗어나라. 다른 사람의 얼굴에서 웃음을 띠울 일을 한 가지씩 하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또한 프리올이라는 사람도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거든 남을 기쁘게 하는 것을 배우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복되게 하려고 노력하면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이 감사가 바로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인 것입니다. 원망, 불평, 짜증, 탄식은 불행과 절망으로 가는 지름길이지만 감사는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우리에게 있는 것을 감사하고 남과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남을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일을 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행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에 감사하는 말을 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인 것입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이웃을 관용하는 마음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관용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용서하는 마음을 갖지 못하면 결코 행복감을 누릴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은 모두 죄인들입니다. 모두 결점이 많고 허물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용서해 주지 않고 비난만 하게 된다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웃을 용서함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비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번은 일만 달란트의 큰 빚을 진 사람이 임금 앞에 불려왔습니다. 임금은 그에게 처자를 다 팔아서라도 일만 달란트의 빚을 갚을 것을 명하였습니다. 그러나 빚진 사람이 통곡하며 말미를 달라고 사정하므로 이를 불쌍히 여긴 임금은 모든 빚을 탕감하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받은 이 사람은 일백 데나리온의 얼마 안되는 빚을 갚지 못한 친구를 만나 멱살을 잡고 감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를 알게 된 임금은 심한 분노와 함께 일만 달란트의 빚을 갚을 때까지 이 빚진 사람을 감옥에 가두어 고생시킬 것을 명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마태복음 18장 35절에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많은 이들이 마음의 감옥에 갇힌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불행과 고통과 좌절과 절망과 슬픔의 감옥에 갇혀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남을 용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몸 찢기고 피 흘려서 용서해 주셨습니다.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모든 죄를 청산하사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또한 의롭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앞에서 용서의 빚을 진 사람들로서 주님께 용서받은 만큼 남을 용서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38절로 42절에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른쪽 뺨을 치는데 왼쪽 뺨까지 돌려 대는 것과 송사하여 속옷을 갖고자 하는 사람에게 겉옷까지 내어 줄 수 있는 것은 관용하는 마음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억지로 오 리를 가고자 하는 자와 십 리까지 따라가는 것도 관용입니다. 오늘날 관용하는 마음을 가지면 많은 갈등과 대립을 피할 수가 있고 우리 마음속에 평안과 행복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의 서재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화가 나거든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열까지 세고 난 다음에 화를 내어라. 남을 죽이고 싶으면 그때는 백을 헤아리고 난 다음 그때도 죽이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죽여라” 대개 화가 날 때 열만 세어도 화는 누그러집니다. 남을 죽이고 싶은 마음도 백을 세면 죽이고 싶은 순간적인 감정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격해지는 감정을 잘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관용하는 마음을 통해서 감정을 가라 앉히고 잘 다스리면 많은 갈등으로 인한 분쟁을 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용서하시고 품에 품어 주셨던 주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는 마찬가지로 이웃을 용서하고 사랑해야 하는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항상 용서하고 관용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자기 마음속에 행복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32절에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말씀하고 있고 골로새서 3장 13절에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용서해 주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용서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에서 남편을 용서하고 아내를 용서하고 부모와 자식을 형제를 용서하는 관용의 마음을 가지게 되면 마음의 행복을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용서와 건강의 관계를 40년 동안 연구해온 북캘리포니아의 태도치유연구센터에서 내린 결론은 “용서는 건강을 되찾아 준다”는 것입니다. 분노, 배신감, 상한 마음을 해결할 수 없는 관용에 인색한 사람은 육체적, 정신적, 영적 고통속에서 병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관용하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은 고통의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4. 사랑으로 섬기는 마음
행복하기 위해서는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태양이 온 천지를 비취는 것처럼 만민을 사랑하십니다. 이 사랑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나타난 것입니다. 몸 찢기고 피흘리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말로만하는 사랑이 아니라 증명된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시고 그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몸이 찢기고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진실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희생하여 이웃을 섬겨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준 계명은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시내산에서 선민계약을 맺을 때 계약 조건으로 십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우상에 절하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네 이웃을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을 탐하지 말라’는 십계명을 지켜야 하나님과의 언약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믿으므로 구원의 언약을 맺은 사람인데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계명을 주었습니다. 그 계명은 바로 사랑의 계명입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로 35절에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말씀하고 있고 로마서 12장 10절에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는 구원받은 사람으로 계명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십계명을 지켜야 하나님과의 언약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신약시대에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사랑을 실천해야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계신 것입니다. 시편 16편 11절에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주님이 같이 계시면 충만한 기쁨과 즐거움이 있으므로 행복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할 때 행복합니다. 사랑받을 때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할 때 행복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랑을 달라고만 합니다. 사랑받으면 행복하지만 얼마 안 지나 그 행복은 시들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랑을 하면 할수록 행복은 더 넘쳐나게 됩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이 행복합니다.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가 행복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할 때 행복하고 자식이 부모를 사랑할 때 행복하고 우리가 이웃을 사랑해서 헌신적으로 그들을 도와줄 때 행복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3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면 하나님이 거처를 같이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행복의 조건을 외적인 면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돈, 지위, 명예, 등 이런 것들로 행복을 누리려고 합니다. 물론 그것이 행복에 기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것도 행복에 보탬이 됩니다. 그러나 마음의 평화, 감사하는 마음, 이웃을 보듬어 안는 관용과 용서, 이웃을 섬기는 희생적 사랑이 없는 행복은 모래 위에 지은 집이 되어 곧 허물어지고 마는 것처럼 사라지는 것입니다. 내적 행복이 있어야 외적 행복의 조건이 가치있게 되는 것입니다. 행복은 마음속에 있는 것입니다. 구주 예수를 믿는 믿음안에서 얻는 마음의 평안 가운데 내 이웃에게 진실로 관용하고 용서하며 섬기는 삶을 살 때에 우리는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와 의와 영광을 얻으므로 평안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므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생각하고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므로 행복하게 됨을 감사합니다. 없는 것을 돌아보지 않고 항상 우리에게 있는 것에 감사하게 하시고 우리가 용서받고 의롭게 되었은즉 이웃에게 관용을 베푸는 마음을 가지고 살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웃을 섬기는 사랑을 가지고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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